'나토 3.0'의 역설…안보 대미 의존 줄여야 하는 유럽, 미국 무기 더 산다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2026.07.19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나토 3.0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앙카라 로이터=뉴스1) 김지완 기자 =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중 양자 회담을 갖고 있다. 2026.07.08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앙카라 로이터=뉴스1) 김지완 기자

유럽의 안보 질서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에 의존했던 유럽이 대규모 방위비 증액과 방위산업 지원으로 자체방위 역량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안보 자립을 위한 유럽의 행보는 오히려 미국산 무기에 대한 의존을 키우는 역설로 나타난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여야 하는 유럽이 미국산 무기 구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살펴봤다.

나토 3.0…美 안보 지원 제한적 유지, 유럽 방위 역량 강화

지난 2월 나토 국방장관회의에서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제공하고 유럽 동맹국은 적은 방위비를 지출했던 '나토 2.0' 체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일방적 의존이 아닌 동반자 관계에 기반한 '나토 3.0' 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토 체제는 냉전기 미국과 유럽이 안보 부담을 분담했던 '나토 1.0', 구 소련 붕괴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함께 미국 중심의 안보 질서가 형성된 '나토 2.0'으로 구분한다. '나토 3.0'은 미국의 제한적 안보 지원은 유지하되 유럽의 방어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안보 부담을 분담한다는 점에서 '나토 1.0'으로의 회귀로도 평가된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이러한 동맹 재편에 대응해 자주 방위체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8000억 유로(약 1250조 원) 규모의 국방 투자를 추진하는 재무장 계획인 'Readiness 2030'을 발표했다.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줄이고 유럽의 독자적인 방위 역량과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 3월 자국의 핵전력을 유럽 동맹국에 전개할 수 있도록 핵 교리도 수정했다. EU 내 유일한 핵보유국인 프랑스가 미국 대신 유럽에 핵우산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EU 방위·우주 담당 집행위원 등은 미군을 대체할 10만 명 규모의 '유럽군'을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불확실성이 커진 동맹관계 속에서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이 유럽 내에서 확산하고 있다"면서 "나토 체계 내에서 당장 미국의 역할을 대체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렵지만, 유럽은 점진적으로 미국 의존을 줄이고 안보 자립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방산기업으로 향하는 유럽의 방위비

안보 자립을 추구하는 유럽은 대규모 무기 도입에 나섰다. 2025년 한 해 동안 유럽 나토 회원국(미국 제외, 캐나다 포함)은 핵심 방위 지출을 1390억 달러 이상 증액했다. 올해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540억 달러 규모의 신규 무기 조달을 발표했고 추가로 3000억 달러 규모의 계약도 추진 중이다. 이는 지난해 6월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에서 국방비를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늘리겠다고 합의한 것을 이행하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유럽 나토 회원국들이 늘린 방위비의 상당 부분이 미국산 무기 구매에 투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유럽 나토 회원국들의 무기 수입량은 2016~ 2020년과 비교할 때 2021~2025년에 143% 증가했다. 이 기간 미국산 무기의 비중은 58%로 한국(8.6%), 이스라엘(7.7%), 프랑스(7.4%) 등과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높았다.

유럽의 대미 의존은 우크라이나 지원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SIPRI에 따르면 2025년에만 약 25개 국이 미국산 방공미사일과 정밀유도무기 등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이전했다. 당장 러시아의 공격을 막을 방공무기가 미국산뿐인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원조가 유럽의 미국산 무기 공동구매로 전환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유럽의 미국산 무기 의존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무기체계로는 F-35 전투기가 꼽힌다. F-35A 기종의 경우 예비 엔진과 공대공·공대지 무장, 훈련, 예비부품, 정비 및 군수지원 등을 포함한 패키지가 대당 약 2억 4000만 달러에 이른다. 그럼에도 2025년 말 기준 유럽 12개국은 총 466대의 F-35를 주문했거나 우선 도입 기종으로 선정했다.

(서울=뉴스1) = F-35A 전투기가 순항미사일·무인공격기 역할을 하는 훈련용 표적을 향해 AIM-9X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 모습. (공군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5.20/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대미 의존을 줄이기 위해 미국산 무기 필요한 역설

유럽이 미국산 무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다. 당면한 러시아의 군사위협에 대응하려면 전투기와 방공체계, 장거리 미사일, 탄약 등을 신속하게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축소된 생산라인을 다시 확대하고 군수공장과 숙련인력, 부품 공급망을 갖추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산 무기 체계의 성능과 가용성도 중요한 요인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이미 높은 수준의 방위산업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전차와 미사일, 잠수함 등을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F-35와 같은 스텔스 전투기와 패트리어트 방공시스템, 토마호크 장거리 정밀타격체계 등은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전력이다. 독일의 경우 최근 나토 정상회의에서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이를 지상에서 발사하는 타이폰 체계 도입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앞서 미국은 독일 주둔 병력 약 5000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혔고 당초 배치 예정이던 장거리화력대대 계획도 취소했다. 전력 공백 우려 속에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유럽의 분열된 방위산업 구조도 미국산 무기 의존을 낳는다. 유럽 국가들은 자국 방산기업과 일자리, 수출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유사한 무기체계를 여러 모델로 나눠 개발해 왔다. 이 과정에서 참여국들이 요구 성능과 사업 지분, 생산 물량을 조율이 어려워지면서 사업 일정은 지연되고 비용도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지난 6월 프랑스·독일·스페인은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위한 '미래전투항공체계(FCAS)'를 추진했지만 업무 분담 미합의 등으로 무산됐다. 차세대 전투기 개발이 이뤄지기까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산 F-35 전투기 도입 외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유럽도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인식해 EU 회원국의 무기 수요를 통합해 공동구매를 늘리고, 유럽 방위기술·산업기반에서 조달하는 비중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EU의 방위 로드맵은 2027년 말까지 전체 방산 조달의 최소 40%를 공동조달 방식으로 추진하고, 유럽 내 조달 비중을 최소 55%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 군사자산 구매 시 저리대출을 지원하는 1500억 유로 규모의 'SAFE' 프로그램도 EU와 지정 파트너국 내에서 부품 비용의 65% 이상 조달하도록 설계됐다. 유럽 방위비가 미국산 장비 구매에만 쏠리는 것을 막고 역내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확대하려는 조치다.

강유덕 한국외국어대학교 LT학부 교수는 "나토 3.0을 통해 동맹 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유럽은 당면한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미국산 무기를 더 구매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