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이상기후가 닥친 가운데 역대급 엘니뇨가 발생, 중남미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해상 물동량의 5%를 소화하는 파나마 운하에 통항 제한 조치가 내려지는 한편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등 일부 중남미 국가는 식량 위기에 직면했다.
21일(현지시간) AFP에 따르면 오는 9월 3일부터 파나마 운하를 지날 수 있는 선박 수가 하루 36척에서 34척으로 줄어든다. 9월 15일부터는 하루에 32척의 선박만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다.
파나마 운하 관리청 관계자는 "운하 유역에 비가 예상만큼 내리지 않아 핵심 수원인 가툰 호수 등 수위가 낮아져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지난 5월부터 세 달간 운하 지역의 강우량이 평년보다 34%가량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3년에도 가뭄으로 가툰 호수 수위가 낮아지면서 파나마 운하의 일일 선박 통행량은 38척에서 22척으로 제한됐었다. 당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물류가 36%가량 줄어들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태평양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 높은 상태로 수개월가량 지속되는 기상 현상이다. 2년에서 7년 주기로 발생하는 이 현상은 통상 3월~6월 사이에 발달하기 시작해 11월~2월 사이에 최고조에 이른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엘니뇨는 최대 18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대기와 해양의 흐름도 달라진다. 그 영향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상 이변이 발생한다. 가령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이 오거나, 비가 적게 내리던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거나, 비가 많이 내리던 지역에 가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날 BBC에 따르면 영국 기상청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2027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애덤 스카이프 영국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예보에서 이처럼 강력한 엘니뇨 신호는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 기후변화 연구소 버클리 어스의 기후 과학자인 지크 하우스파더 박사 역시 "이번 엘니뇨 현상은 500년, 심지어는 100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라질에선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인 아마존이 가뭄에 위협받고 있다. 브라질 기상청은 지난 3일 "이례적으로 강력한 엘니뇨 현상으로 아마존 우기 시작 시기가 늦어지고, 기온이 상승하며, 강 수위가 낮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로이터는 지난 20일 아마존 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타파조스 강의 수심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4대 곡물 기업으로 꼽히는 번지, 카길 등은 이 강을 따라 연간 약 1500만톤의 곡물을 운송해 왔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대두 수출국이자 주요 옥수수 수출국으로 꼽힌다. 향후 주요 식량 작물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관측된다.
콜롬비아에서는 농가들이 가뭄에 고통받고 있다. 콜롬비아 농가 대다수는 비에 의존하는 강수 의존형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지난달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콜롬비아 농가의 약 72%가 강수량에 크게 의존한다.
하비에르 디아즈 콜롬비아 대외무역협회 사장은 "엘니뇨 현상으로 내년 4월까지 가뭄이 지속되며 커피, 바나나, 아보카도, 과일 등 수출 부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커피 재배자 연맹(FN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콜롬비아의 커피 생산량은 558만자루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10%나 줄었다.
페루에선 인근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어족 자원 고갈이 심화하고 있다. 페루 태평양 연안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해양 생태계가 교란돼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알폰소 미란다 페루 수산부 전 차관은 "올해 어업 생산량은 목표치인 50억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페루 정부는 지난 13일 엘니뇨 현상 심화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60일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페루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전국 16개 주, 총 607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