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꿀까 [PADO]

PADO 국제시사문예지
2026.10.31 06:00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우리 사회의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는 너무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의 극단론에 치우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제를 보다 신선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미국의 지식·정책 계간지 '애스터리스크'의 편집장 클라라 콜리어는 현대의 노동 개념이 AI로 인해 형해화될 경우 사회가 다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닌 '누구와 가까우냐'로 개인을 평가하는 관계중심의 사회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합니다. 우리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자아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는 사회에서 살아왔기에 관계중심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를 쉬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역사에는 그런 사례의 기록이 적지 않게 남아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래된 미래'인 셈입니다. 콜리어는 18세기의 궁정사회부터 20세기의 상류층 여성 사회와 노동계급의 사회 등을 살펴보면서 관계중심 사회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에세이의 말미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고전적 자유주의(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준 선물('자유로운 개인')의 값어치를 재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사람들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지내게 될까? 인공지능(AI)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모든 형태의 노동에서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면 말이다.

우리가 모두 여전히 살아 있고 사이버펑크풍 봉건주의 디스토피아의 신민으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점차 하나의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 기계가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예 일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겉보기에만 현대의 고용 형태를 닮은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경제학자 알렉스 이마스가 에세이 '무엇이 희소해질 것인가'에서 '관계 부문'(relational sector)이라 부른 영역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는 일에는 언제나 인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관계 중심 일자리는 어떻게 얻게 될까? 당연히 인맥을 통해서다. 어차피 누구나 모든 지식을 다 아는 세상이니,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실제로 시사하는 바는 현대적 노동의 연장이라기보다는 노동을 바라보던 훨씬 오래된 문화적 인식으로의 회귀에 가깝다. 이마스는 이 점을 직접적으로 짚어낸다. "산업화 이전에는 생산품과 그것을 만든 사람을 분리하기가 어려웠다. (…) 경제적 거래에는 소비 경험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뚜렷한 사회적 요소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산업화 이전에는 일한다는 행위 자체가 존엄하거나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촘촘하게 얽힌 사회적 세계에 어떻게 참여하느냐였다. 다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관계중심의 미래를 내다보는 이 모든 예측은 자연스럽게 그런 세계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이 삶의 틀과 정체성, 의미를 부여하는 세계다.

안타깝게도 그 예측이 맞을 것 같다.

유인원들의 권력과 성

기술과 문화적 변화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일반화해 단정하는 일은 늘 위험이 따르기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도 과장이 심하다. 미래가 과거와 조금이라도 닮았다면—그럴 것이라 믿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사례 연구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먼저 18세기 귀족들부터 살펴보자. 귀족들은 (대체로) 부유한데 비관계적 일반 노동을 모두 해낼 수 있는 로봇을 갖게 된다면 우리 역시 분명 부유해질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들이 물질적 자원을 확보해야 할 때 인맥을 동원해 토지를 더 얻거나 궁정 내 알짜배기 직위를 따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사실이다. 고된 노동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들은 보수를 받기 위해 일하지 않았고 노동을 삶의 의미를 찾는 원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 중 일부에게는 통치를 하거나 서로를 죽이는 일처럼 실질적인 의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절대왕정 시대의 궁정 생활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그 어떤 사례보다도 순수한 관계 중심 세계에 가깝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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