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0월 31일. 장기 미제 사건인 '동해 학습지 교사 피살 사건'을 재검토하기 위한 경찰 사건심사 시민위원회 첫 회의가 강원지방경찰청에서 열렸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결정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았고 범인의 정체는 21년째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집에 간다" 실종된 학습지 교사…우물 속 시신으로 발견

사건은 2006년 3월 14일 강원 동해시 망상동 심곡약천마을 약천사 앞 우물에서 시작됐다. 당일 오후 2시쯤 갈증을 느껴 우물을 찾은 주민은 평소보다 물줄기가 약한 것을 이상하게 여겨 뚜껑을 열었다. 우물 안에는 나체 상태의 여성 시신이 있었다. 동해시에 거주하며 학습지 교사로 일하던 김모씨(당시 24세)였다.
경찰은 김씨가 우물에 빠져 숨졌을 가능성을 살폈다. 그러나 우물 깊이가 70㎝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얕았고 뚜껑까지 덮여 있어 단순 익사로 보기 어려웠다. 부검 결과 사인은 목 졸려 발생한 '경부 압박 질식사'로 밝혀졌다. 누군가 김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우물에 유기한 것으로 판단한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김씨는 시신이 발견되기 엿새 전인 3월 8일 실종 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이날 오후 9시40분쯤 동해시 부곡동 한 아파트에서 가정 방문 교육을 마친 김씨는 직장 상사에게 통화로 "집으로 간다"고 말한 뒤 연락이 끊겼다.
부검 결과 위장 안에서 가정 방문 교육 시 먹었던 과일이 발견되면서 김씨는 실종 당일 살해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피해자 소유 빨간 마티즈 발견…흔적 지운 범인

경찰은 우물과 7~8㎞ 떨어진 동해체육관 앞 주차장에서 김씨 소유의 빨간색 마티즈 승용차를 발견했다. 차량 안에는 김씨의 옷과 일부 소지품이 남아 있었고, 누군가 내부를 뒤진 듯한 흔적도 있었다.
경찰은 범인이 차량에 타려던 김씨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가 마지막으로 방문 교육했던 부곡동을 기준으로 시신이 발견된 우물은 북쪽으로 약 4㎞, 차량이 발견된 주차장은 남쪽으로 약 4㎞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범인이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시신과 차량을 서로 다른 방향에 유기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차량에서는 범인을 추적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범인이 차량 내부와 외부를 깨끗이 닦아낸 탓에 지문이나 DNA 등 흔적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김씨의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도 수사를 벌였으나 뚜렷한 단서는 얻지 못했다. 당시에는 차량 블랙박스와 CC(폐쇄회로)TV가 보편화되지 않았고 목격자도 없어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3개월 뒤 잇따른 습격, '빨간 차' 여성들만 노렸나…21년째 미궁
사건 실마리가 풀리지 않던 중 3개월 만에 동해시 부곡동에서 비슷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경찰은 김씨 사건과의 연관성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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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건은 같은 해 6월 1일 발생했다. 부곡동에서 자신의 차량에 타려던 40대 여성 A씨가 괴한에게 습격당했다. 범인은 A씨를 폭행한 뒤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격렬한 저항에 범행을 이어가지 못했고, 목이 졸려 의식 잃은 A씨를 차량과 함께 김씨의 시신이 발견된 우물 근처에 버린 뒤 달아났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A씨는 한밤중 습격으로 정신을 잃은 탓에 범인의 인상착의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두 번째 사건은 약 3주 뒤인 6월 23일 발생했다. 부곡동 한 아파트에 남편과 함께 도착한 40대 여성 B씨는 통화할 일이 있다며 남편에게 먼저 집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친 B씨가 차량에서 내리려던 순간, 한 괴한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주먹을 휘둘렀다. B씨가 저항하며 비명을 지르자 범인은 현장을 벗어나 인근 골목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세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판단했다. 범행 시간과 장소, 피해자를 제압하는 방식 등에서 공통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김씨와 A씨, B씨는 키 150㎝대로 체구가 작은 여성이었으며 늦은 저녁 시간대에 부곡동 아파트 인근에서 혼자 차량에 타거나 내리던 중 공격받았다. 세 사람의 차량이 모두 빨간색이었다는 점과 범인이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또 세 사건이 발생한 장소 모두 반경 100m 안에 모여 있었다.
B씨 차량에서는 유일하게 범인의 흔적이 발견됐다. 룸미러에 끼어있던 머리카락 한 올을 분석한 결과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제3자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동해 지역에 거주하는 우범자와 강력범죄 전력자 등을 대상으로 머리카락에서 얻은 DNA와 대조하는 작업을 벌였으나 일치하는 인물을 찾지 못했다.
이후 동해시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범인이 지역을 떠났거나 신상에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결국 미궁에 빠진 사건은 21년째 장기 미제로 남아 있다. 2019년 경찰이 시민위원회를 통해 사건을 재검토하기로 했지만, 범인을 특정할 결정적 단서는 확보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