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는 금융자산이 될 수 있을까?…엔비디아·브로드컴의 도전

안재용 기자
2026.11.01 06:00

[선데이모닝인사이트] AI 반도체 금융자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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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미국)=뉴스1) 허경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부터)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CEO, 혹 탄 브로드컴 사장 겸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드웨이에서 열린 AI 서밋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6.7.25/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샌프란시스코(미국)=뉴스1) 허경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를 항공기와 선박처럼 은행·증권사 등에 담보 제공이 가능한 금융자산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른바 순환금융 논란을 반도체 금융자산화로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83조원 금융 거래…브로드컴의 잔존가치 보증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 모건스탠리, 블랙스톤 등 금융사 4곳은 지난 26일(현지시간) 630억달러(약 83조원) 규모의 AI 인프라 금융 거래를 발표했다. 확보한 자금은 미국 나스닥 상장을 앞둔 AI기업 앤트로픽이 사용할 반도체와 네트워크 장비를 구매하는 데 쓰인다.

해당 거래의 구조는 독특하다. 새로 설립하는 특수목적회사(SPV)가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해 브로드컴의 맞춤형 AI 가속기(XPU)와 네트워크 장비를 사들인다. SPV는 장비를 앤트로픽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모건스탠리가 선순위 금융을 주선하고 블랙스톤은 후순위 금융의 확약 부분을 제공한다. 앤트로픽은 거액의 장비를 한꺼번에 직접 구매하는 대신 사용하면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눈에 띄는 것은 브로드컴의 역할이다. 브로드컴은 선순위 금융에 상응하는 규모의 '잔존가치 지원'을 SPV에 제공하기로 했다. 일정 기간 사용한 장비가 나중에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유지할지 불확실한 만큼 관련 위험의 일부를 공급업체가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지급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잔존가치 보증은 장비를 일정 기간 사용한 뒤 실제 가치가 계약상 보장한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보전해주는 금융 장치다. 예컨대 100억원에 구매한 장비의 5년 뒤 가치를 30억원으로 보장했다면, 실제 가치가 10억원에 그칠 경우 보증을 제공한 기업이 차액인 20억원을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왜 반도체를 파는 회사가 금융 거래에까지 참여할까. 브로드컴이 지난 9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브로드컴은 자체 금융 플랫폼 'AI XPV'의 목적을 AI 선도기업들의 현재 현금흐름과 막대한 초기 인프라 투자 사이의 격차를 메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비록 브로드컴이 잔존가치에 대한 보증을 제공하긴 했지만 금융회사들이 AI 반도체를 담보로 자금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LLM(거대언어모델)을 만드는 기업을 통해 번 돈을 다시 그 회사에 제공하는 순환금융과는 차이가 있다.

[베를린=AP/뉴시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9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투자 서밋’(인베스트 인 저머니 서밋) 개막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젠슨 황은 "디지털 기술이 기존 제조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것"이라며 "전자가 원자를 대체할 수 없듯이 인공지능(AI)은 우리의 역량을 강화할 뿐 대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26.10.20. /사진=민경찬

반도체를 항공기처럼…엔비디아가 구상하는 금융시장

이는 브로드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엔비디아는 AI 컴퓨팅 설비를 독립적인 금융자산군으로 만드는 구상을 공개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8월 10일 아폴로·블랙록·블랙스톤·브룩필드·골드만삭스·KKR 등 6개 금융회사와 손잡고 장기적으로 5000억달러 이상의 외부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금융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월 11일 엔비디아 공식 블로그에 '엔비디아 AI 공장의 컴퓨팅 자원이 투자 가능한 자산군이 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황 CEO는 해당 글에서 "기업들이 반도체를 구매하고 데이터센터를 개별적으로 건설하던 시대에서 장기 기관자본을 활용해 생산적 인프라로서 AI 공장에 투자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AI에서 컴퓨팅은 매출이다"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비행기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항공사가 운항에 필요한 항공기를 모두 자기 돈으로 구입하지는 않는다. 리스회사가 항공기를 사서 항공사에 빌려주면 항공사는 운항 수익으로 임대료를 지불한다. 금융기관은 임대료와 계약이 끝난 뒤 항공기를 다시 빌려주거나 팔 수 있는 가치를 바탕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선박과 해운 컨테이너 등에서도 활용되는 방식이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에도 비슷한 구조를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AI 연산 장비는 데이터센터에서 모델을 훈련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쓰인다. 컴퓨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지급하는 사용료가 수익이 된다. 장비를 소유한 금융회사는 그 수익을 바탕으로 임대료를 받고, AI 기업은 일시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줄일 수 있다. 미래에 발생할 컴퓨팅 수익을 현재의 장비 도입 자금으로 바꾸는 구조인 셈이다.

이같은 움직임에는 AI 업계를 둘러싼 '순환금융'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반도체 기업이 AI 개발사나 클라우드 기업에 투자하고 이들이 받은 자금으로 다시 해당 기업의 반도체를 구매하는 구조를 놓고 논쟁이 이어졌다. 투자가 새로운 매출로 돌아오는 관계에서 실제 수요와 자금 순환 효과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엔비디아는 이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황 CEO는 지난 8월 글에서 "이것도 순환금융인가. 이 구상은 순환금융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됐다"라며 "우리는 AI 인프라 시장에 독립적인 장기 기관투자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에 있는 디지털리얼티 데이터센터 내부 복도. 양옆으로 데이터홀과 설비실로 통하는 보안문이 이어지고 천장에는 전력·네트워크 설비가 설치돼 있다./사진=구자윤 기자 /사진=구자윤

4년 아닌 8년?…AI 반도체의 경제적 수명이 관건

AI 반도체의 금융자산화를 위해 두 회사가 강조하는 것은 반도체의 '경제적 수명'이다. 항공기 또는 선박이 장기간 여러 회사에서 운항될 수 있는 것처럼 반도체도 앞으로는 다양한 이용자들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황 CEO는 지난 21일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AI 컴퓨팅 장비의 사용기간이 8년 또는 그 이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해당 장비들의 사용기간이 통상 4년 안팎으로 여겨졌다.

황 CEO는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기존 장비의 성능과 활용도를 계속 높일 수 있고 최신 모델 훈련에 쓰지 않더라도 다른 연산 작업에 투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엔비디아의 컴퓨팅 장비가 상당한 잔존가치를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출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영화 '빅쇼트'의 모델로 유명한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지난해 11월 빅테크 기업들이 AI 장비의 감가상각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아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엔비디아의 반도체와 서버가 2~3년 주기로 빠르게 교체되는데도 주요 기업들은 장비의 사용기간을 5~6년으로 늘려 회계상 비용을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버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2026~2028년 빅테크의 감가상각비가 총 1760억달러 과소계상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28년에는 오라클과 메타의 이익이 각각 약 27%, 21%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두 진영의 주장에는 모두 근거가 있다. 버리의 주장은 반도체가 빠르게 세대교체를 거듭하고 구형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기존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AI의 확산으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신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구형 반도체도 추론이나 소형 모델 운영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출시된 엔비디아의 A100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이 추진하는 것은 AI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전략이다. AI 반도체가 창출하는 미래 수익과 장비의 자산가치를 토대로 금융기관의 자금을 유치해 고객사의 반도체 구매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시장이 확대되면 AI 기업들은 자체 보유 자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자본을 활용해 인프라 투자를 늘릴 수 있게 된다.

혹 탄 브로드컴 CEO는 지난 26일 "AI 컴퓨팅 수요가 놀라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며 "이번 거래는 이러한 성장을 지원할 자본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해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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