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대규모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사업 계획을 잇달아 내놨지만, 정작 데이터센터 경쟁력을 좌우하는 에너지효율 관리 체계는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증할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전력 공급 확충과 함께 전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실태 파악과 정책적 확실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데이터센터 맞춤 효율 정책 부재…실태 파악도 미흡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머니투데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데이터센터에 특화된 에너지효율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며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등에 따른 일반 건축물의 에너지효율 규제를 적용받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은 연면적 1000㎡ 이상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단열 성능과 냉난방·전기설비 등의 에너지효율에 관한 설계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도 적용 요건에 해당하면 규제 대상이 되지만, 일반 건축물의 설계 기준인 만큼 데이터센터 운영 특성을 반영한 별도 효율 관리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는 진단이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과 전기사업법, 분산에너지법 등에도 데이터센터 에너지효율과 관련한 규제가 일부 마련돼 있다. 다만 대부분 신축 단계에서 일회성으로 적용되는 데 그치고 운영 과정에서 에너지효율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거나 보고하는 체계는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데이터센터 에너지효율 규제를 위해서는 효율 정보를 수집·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하지만 한국은 국내 데이터센터의 수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효율을 나타내는 'PUE(전력사용효율)'다. PUE는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소비량을 서버와 저장장치 등 IT(정보기술) 장비의 전력 소비량으로 나눈 값으로, 1에 가까울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뜻이다. 같은 양의 전력을 쓰더라도 냉각 등 보조설비에 드는 전력이 적을수록 PUE가 낮아져 데이터센터를 더 적은 전력으로 운영한다는 의미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주요국에서는 PUE 기준 충족을 제도화해 데이터센터 에너지효율 관리의 핵심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에너지효율지침(EED)'을 통해 500㎾(킬로와트) 이상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사용량 등 운영 데이터 보고를 의무화했다. PUE 등 효율 지표도 EED를 통해 산출·관리한다.
전력 낭비 줄이기…"관리 첫 단추는 측정"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같은 기본 지표를 산출하기 위한 계량 설비조차 갖추지 않은 데이터센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김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이다. PUE를 정확히 산출하려면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소비량과 IT 장비에 사용된 전력량을 구분해 측정해야 한다.
그는 "지난해 공개된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316곳 가운데 실제 PUE 측정값을 제출한 곳은 45곳에 불과했다"며 "현재는 설문조사로 PUE를 파악하는 수준이고 제출된 수치에 대한 검증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확한 측정을 바탕으로 PUE를 개선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전력 공급 부담을 낮추고 사업자 역시 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 효율 관리가 단순한 규제를 넘어 공익과 사업자의 이익을 함께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IT 장비의 전력 부하가 20㎿(메가와트)인 데이터센터의 PUE를 1.5에서 1.4로 낮추면 연간 약 190만달러(약 25억원)의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까지 18.4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구상을 밝히는 등 투자가 본격화하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에너지효율 관리 체계의 방향을 설정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전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중심을 두고 있으면서 정작 에너지효율 개선을 통한 에너지 절감은 소홀한 듯하다"고 했다. 이어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도 없다"며 "명확한 데이터센터 분류체계를 구축하고 운영자가 세부 에너지 사용 정보를 보고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정책 일관성 중요"…효율 평가도 다각화해야
업계는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러 부처의 정책이 적용되는 만큼 데이터센터의 특성을 고려한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 투자와 운영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데이터센터 업계를 대표하는 산업단체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의 강승훈 산업진흥팀장은 "숫자를 지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정책의 일관성"이라고 말했다. 현재 데이터센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여러 부처의 정책을 적용받고 있다.
강 팀장은 "해외 사업자들이 한국 시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불확실성"이라며 "데이터센터의 특수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방안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PUE를 넘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사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개선을 유도할 체계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PUE는 냉각·전력 공급 등 부대설비의 효율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IT 장비 자체의 효율이나 연산 성과는 반영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는 지표로는 소비 전력 대비 서버의 처리 성능을 평가하는 '서버 에너지효율(ITEEsv)', 사용한 에너지 대비 유용한 작업량을 따지는 '데이터센터 에너지 생산성(DCeP)' 등이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전력시스템의 부담을 고려해 지역별 차등 PUE, 계통 피크 시 부하 감축 가능량, 수요반응(DR) 가능량 등을 반영한 지표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본 기획 취재는 한국기자협회와 기후미디어허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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