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의 유일한 분만의료기관인 제일병원이 오는 31일 진료를 끝으로 40년 만에 폐업하기로 하면서 이 일대 분만의료 마비가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병원은 최근 수년간 매달 1억5000만원 적자에 허덕이면서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에선 이런 분만 의료기관 폐원 사례가 전국적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정부의 시급한 대책을 요구했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전국 분만 가능 의료기관은 445곳으로 2014년(675곳)보다 34.1% 줄었다. 특히 1차 의료기관(의원급)만 보면 같은 기간에 376곳에서 178곳으로 무려 52.7%나 쪼그라들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250개 시군구 중 분만기관이 1곳도 없는 지역은 77곳(30.8%)이고 분만기관이 1곳만 남은 지역은 60곳(24%)에 달했다.
제주·전북에서도 분만 의료기관의 '불'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제주의 출생아 3명 중 1명(연간 약 3000명)이 태어난 서해산부인과의원도 오는 29일 진료를 전면중단하고 폐원절차를 밟는다. 365일, 24시간 당직으로 인한 의료진의 체력고갈이 폐원사유로 알려졌다. 전북 진안군의료원 산부인과도 최근 진료를 중단했고 전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도 핵심 전문의 이탈로 운영중단 위기에 내몰렸다.
지방 분만의료의 붕괴는 '분만 뺑뺑이'로 인한 태아 사망 사례로도 확인된다. 지난 5월 충북 청주에선 29주차 산모의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지만 전국 병원 12곳에서 "인큐베이터가 없다" "진료과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헬기까지 동원해 3시간30분이 걸려 부산까지 날아갔지만 태아는 숨을 거뒀다.
산부인과 중에서도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는 '잿빛 미래'가 예고된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 40여개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임의는 17명이고 이 중 산과 전임의는 5명으로 파악됐다. △2023년 7명 △2024년 8명 △2025년 8명에서 더 줄어든 것이다.
단지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직격타를 입은 산부인과의 현실도 드러났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의 '헬스맵'과 복지부의 '공공보건의료 데이터'(2023년 기준)를 분석했더니 인천 강화군·옹진군에선 △분만실 △고위험 분만 △신생아실 △NICU(신생아집중치료실)의 관내 의료 이용률이 모두 '0%'로 나타났다.
특히 옹진군의 분만 취약인구율은 95.1%에 달했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상주하는 산부인과 전문의는 1명도 없다. 허 의원은 "강화군과 옹진군이 행정구역상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각종 의료지원 정책에서 소외됐다"라고 비판했다.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도 급한 대로 대책을 내놨다. 복지부는 지난해 7월, 불가항력적 분만 의료사고의 보상한도를 기존 최대 3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10배 높인 데 이어 지난 11일부터는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 대상을 기존 신생아 뇌성마비, 신생아 사망, 산모 사망에서 '산모 중증장애'도 포함했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보상금은 유형에 따라 △산모 사망시 1억원 △신생아 사망시 3000만원 △태아 사망시 2000만원으로 책정됐고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또 복지부는 고위험 임산부 집중관리료를 기존 3만5000원에서 7만원으로 올리고 28주 미만 조산아를 분만하면 최대 506만원을 가산, 신생아 중환자가 입원하면 최대 144만원을 가산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분만은 24시간, 365일 의료진과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 대표적인 필수의료 영역으로 환자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의 논리에만 맡길 수 없는 분야"라며 "정부는 분만 취약지역에 대한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분만 건수가 적은 지역에서도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지속해서 진료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