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만치료제 경쟁이 체중감량 효과에서 의료비 절감 여부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일라이 릴리가 비만치료를 통해 약값 외 의료비를 낮출 수 있다는 실사용 근거를 제시하면서다. 아직 비만치료제를 상용화하지 못한 국내 제약사들에도 감량률과 투약 편의성에 더해 장기적인 비용효과가 향후 입증해야 할 경쟁력으로 추가될 가능성이 커졌다.
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릴리는 최근 비만치료제 '젭바운드'(성분명: 터제파타이드)를 지속해서 투여한 55세 이상 비만·과체중 환자의 의료비가 미치료군보다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미국 의료보험 청구자료를 활용해 젭바운드 투여 환자 1만5843명과 인구학적·임상적 특성이 비슷하면서 GLP-1 계열 치료제를 투여하지 않은 환자를 비교했다. 젭바운드 약제비를 제외한 월 의료비는 투여 6개월 시점에 미치료군보다 환자당 최대 181달러(15%), 12개월 시점에는 최대 607달러(38%) 적었다. 젭바운드 투여군은 입원과 응급실 이용률도 낮았다.
릴리는 투여 6개월부터 발생한 의료비 절감액이 미국 메디케어의 'GLP-1 브리지 프로그램'상 월 치료비 195달러에 근접했고, 12개월부터는 이를 웃돌았다고 설명했다. 비만치료에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입원과 응급실 이용 등 다른 의료비가 줄면 고가 약제비를 일부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이번 연구는 젭바운드의 실제 순가격을 제외한 의료비만 비교했다. 환자를 무작위로 배정한 임상시험이 아닌 후향적 관찰연구여서 젭바운드 투여가 의료비 감소를 직접 유발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전체 비용의 순감소를 입증했다기보다 의료비 절감으로 약제비를 상쇄할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의료비 절감 효과가 향후 비만치료제의 보험 적용과 시장 경쟁에서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비만치료제는 장기간 투여가 필요한 데다 가격이 높아 보험 적용 여부가 환자의 접근성과 치료 지속률을 좌우한다. 보험자 입장에서는 감량률뿐 아니라 합병증과 전체 의료비를 얼마나 줄이는지도 약제의 가치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가격은 GLP-1 계열 치료제의 건강보험 진입을 가른 핵심 변수였다. 한국릴리는 지난 6월 마운자로의 성인 제2형 당뇨병 치료 목적 건강보험 급여를 재신청했다. 앞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급여 적정성을 인정했지만 지난 5월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에서 합의하지 못했다. 비만이 아닌 당뇨병 적응증 사례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치료제도 임상적 유용성만으로 보험 진입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이 자체 개발한 비만치료제 가운데 아직 품목허가를 받은 사례는 없다. 한미약품과 동아에스티, 일동제약 등이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지만 시장에 진입할 때는 선발 제품이 의료비 절감 자료까지 축적한 뒤일 가능성이 있다. 감량 효과를 넘어 각 후보물질의 차별점이 치료 지속과 합병증·의료비 감소로 이어지는지를 입증할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현재 개발 중인 국내 기업들은 체중감량 외 효과와 복용 편의성, 제조 경제성 등을 앞세워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 한미약품이 제넨텍에 기술수출한 'HM17321'은 체중과 체지방을 줄이면서 제지방과 근육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임상 연구에서 체중·체지방 감소와 제지방량 증가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현재 미국 1상이 진행 중이다. 근육 보존이 신체기능 저하와 입원 위험 감소로 이어질 경우 의료비 측면에서도 차별화할 수 있지만 후속 임상을 통한 확인이 필요하다.
동아에스티의 미국 자회사 뉴로보 파마슈티컬스는 GLP-1과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는 'DA-1726'을 개발하고 있다. 체중감량과 함께 에너지 소비 증가와 대사질환 개선 가능성을 차별점으로 내세운다.
일동제약은 하루 한 번 복용하는 경구용 저분자 GLP-1 수용체 작용제 'ID110521156'을 개발 중이다. 지난해 말 임상 1상 데이터 공개 당시 ID110521156이 기존의 대표적 치료제인 펩타이드 주사제에 비해 △약리적 특성 △제조 효율 및 경제성 △사용 편의성 측면에서 차별점을 지닌다고 밝힌 바 있다.
기존 펩타이드 주사제와 달리 먹는 합성신약으로 개발해 복용 편의성과 제조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구제의 복용 편의성과 낮은 생산단가가 장기적인 치료 지속과 환자의 약제비 부담 감소로 이어지는지는 후속 개발과 상용화 과정에서 확인해야 한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ID110521156은 저분자화합물 기반의 합성신약으로 유효물질 합성 등 제조공정에 있어 효율성이 탁월하고 생산단가가 월등히 낮아 상용화 시 경쟁력이 높고, 약제비 등 환자의 약물 경제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