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년 전 오늘…종교개혁 이룬 '개신교의 아버지' 잠들다

구유나 기자
2016.02.18 06:13

[역사 속 오늘]독일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영면

마르틴 루터 초상화./출처=위키피디아

내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다. 1517년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독일 신학자 마르틴 루터(1483~1546)다.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아버지' 루터는 470년 전 오늘 영면에 들었다.

루터가 원래부터 성직자의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1483년 10월 독일 작센안할트주 아인스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전환점이 된 시기는 22세 여름이었다. 길을 걷던 젊은 루터의 눈앞에 벼락이 내리 꽂혔다. 벼락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인 루터는 "성 안나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저는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이후 법률 공부를 포기하고 튀링겐주 에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에 들어가 신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중세 교회와 로마 교황은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교황청은 돈을 받고 죄를 사하여 주는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모았으며 성직은 세습되거나 매매되기도 했다.

루터는 부패한 중세 교회에 대항해 한 장의 종이를 들고 나섰다. 1517년 10월31일 루터는 '95개의 논제'라는 제목의 종이를 비텐베르크 성 교회 출입문에 붙였다.

종이에 적힌 '95개의 논제'는 종교 권력 남용과 성직 매매, 면죄부 판매 등 중세 교회의 폐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종이는 단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그는 신학자 에크와의 논쟁과 '그리스도인의 자유'(On Christian Liberty)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성서 중심주의를 강화해 나갔다.

교황이 보낸 교서와 로마교회 법전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를 교황에 대한 도전이라고 본 교황 레오 10세는 1521년 1월3일 루터에게 영원한 추방을 선고했다.

루터는 신성로마제국에서 추방당한 후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지내면서 라틴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함으로써 성서 대중화뿐 아니라 독일어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루터에 대한 비판도 있다. 1524년 발발한 독일 농민전쟁에서 농민들이 루터의 사상을 통해 반란을 정당화하려고 했으나 루터는 이를 거부하며 오히려 제후들의 편에 서서 농민들을 탄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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