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남성 역차별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럼에도 남은 의문은 많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정치적인 평등을 넘어 사회·문화분야에도 페미니즘의 시각이 적용돼야 하는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페미니즘이 어디까지 양립할 수 있는지 등이다.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은 이처럼 페미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에 대해 힌트를 준다. 페미니즘은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의 이론을 통해 발전해왔다. 누군가는 여성도 참정권, 교육권 등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누군가는 여성의 지닌 차이를 강조했다.
책은 시몬 드 보부아르부터 뤼스 이리가레, 샌드라 하딩, 주디스 버틀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페미니즘을 연구했던 사상가 8명의 이론을 소개한다.
‘제2의 성’으로 유명한 철학자 보부아르는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사상가다. 그는 여성이 태어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존재’임을 인정할 때 진정한 여성해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산물인 성 역할에 고정돼있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된 실존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는 여성의 법적 권리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자립도 중시한다.
이리가레는 평등하기 위해서라면 여성도 남성적이어야 한다는 시각을 비판한다.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되 남녀의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여성은 자신의 여성성을 가꾸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봤다.
과학철학자인 샌드라 하딩은 백인 엘리트 남성 중심의 과학을 비판하고, 도덕 심리학자 캐롤 길리건은 ‘남성의 정의’만이 아닌 ‘돌봄’도 보편적인 윤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깁슨-그레이엄'이란 필명을 사용했던 경제학자 줄리 그레이엄과 캐서린 깁슨의 연구도 주목할만하다. 깁슨-그레이엄은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정치경제학의 판을 새로 짜고자 했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냈던 이들은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가사노동, 감정 서비스, 교육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협동조합·사회적 기업·마을경제 등 그들이 제시했던 '다른' 경제모델은 자본주의 한계에 부딪친 오늘날 대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문학의 남근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여성적 글쓰기를 주장한 엘렌 식수, 사회적 집단 간 차이를 억압하지 않고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아이리스 영, 다양한 양상을 지닌 여성의 정체성을 파고든 주디스 버틀러의 이야기도 차례로 등장한다.
페미니즘을 하나의 이론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특정 분야의 학문으로 제한되지도 않는다. 8명의 이론을 차례로 읽어나가다 보면 페미니즘이 철학, 문학, 사회학부터 역사학, 경제학, 정신분석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일종의 도구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종 시험에서 '여풍'(女風)이 분다고 한다.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됐고 여성을 앞세운 '여성가족부'라는 부처도 있다. 예산이 남녀에게 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하는 '성인지예산제도'도 존재한다.
그러나 제도만으로 완전한 평등이 이뤄지진 않는다. 진정한 양성평등에 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책은 양성평등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엮음. 사월의책 펴냄. 288쪽/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