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산업시대에서 받은 유산으로는 이제 생명과학과 인공지능(AI)의 새로운 시대에 직면하긴 어려워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이유죠.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90%는 아이가 40대가 됐을 때 쓸모없을 확률이 높아요.”
인류의 전 역사를 뛰어난 통찰로 해석한 ‘사피엔스’(김영사)의 저자 유발 하라리(40)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 교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26일 서울 중구 동화빌딩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앞으로는 수업시간이 아닌 휴식시간에 얻은 놀이가 쓸모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죠. 만약 부모나 선생님이 지금 아이에게 하는 충고는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에요. 2050년대에는 선생님이나 연장자로부터 배운 걸로는 인간 생활을 하기가 불가능한 역사상 첫 사례로 기록될 거예요.”
하라리 교수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30, 40년 후쯤으로 내다봤다. 그는 “다 아시겠지만,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몰아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새로운 직업도 인공지능이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감정적 기술이 인공지능보다 나은 우위의 산물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결국 인공지능에 뺏길 거예요. 생물학에서 인간이 결정하는 감정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데, 인간 감정이 인공지능보다 뛰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요. 감정 알고리즘을 분석하는 것에서도 인공지능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거든요.”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빈부의 격차 역시 커진다는 게 그의 논리다. 기술을 지배하는 소수 엘리트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일이 점점 쉬워지기 때문.
그는 또 지구 온난화나 인공지능이든 인류가 미래에 도전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지구적인 정치 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그 체제는 독재적이거나 전쟁과 폭력으로 이뤄져서는 안되지만, 분명한 건 200여 개 분리된 정치체제에선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하라리 교수가 현재 목격하는 세상은 ‘결합의 파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지능이 높은 것은 의식 수준도 높았지만, 이제 지능은 높지만 의식 상태가 없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은 그런 소용돌이의 중심인 셈이다.
“현재 강자가 지배하는 정치체제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인간이 뿔뿔이 흩어질 때라고 생각해요. 고대사회에선 제국 없이도 잘 살았어요. 마을에서 만나는 문제는 전부 국지적이었죠. 개별 국가(작은 공동체)가 전 지구적 문제와 맞닥뜨릴 때 해결할 힘이 있을까요? 그래서 전 지구적 정치 체제가 필요한 법인데, 이를 해결하려면 경제 성장을 멈추는 길밖에는 없어요. 하지만 어떤 국가도 기꺼이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죠.”
하라리 교수가 제안하는 ‘새로운 모델’의 구체적 청사진은 없다. 다만 그런 모델이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재앙, 갈등의 배경을 안고 태어난 진보의 대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꼭 그래야만 할까.
“새로운 모델을 평화적으로 만든 사례도 있죠. 핵무기가 나왔지만, 반세기 가까이 사용하지 않았잖아요. 그 덕분에 우리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는 거예요. 인공지능 같은 기술을 평화적으로 다룰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하라리 교수는 책에서 권위와 주도권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통해 인류의 위기를 얘기했는데, 생존의 화두는 ‘행복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이 질문을 받자, 그는 “큰 질문”(Big question)이라고 웃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자기 주변의 세상을 바꾸면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했어요. 환경, 경제체제, 정치를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죠. 바깥세상을 바꾸는 건 많이 해봤지만, 완벽하지 못한 걸 알고 내면의 변화로 향하고 있잖아요? 우리의 생화학적 조상들은 두뇌를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것이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는 거예요. 인간은 성취할수록 무언가를 더 원하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마음 깊숙이 들여다보며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관찰해야 하는 이유예요.”
채식주의자인 하라리 교수는 책에서도 언급했듯 ‘불교’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매일 두 시간씩 명상하고, 매년 한두 달은 이메일도 핸드폰도 없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산다.
“적어도 제겐 효과가 있어요. 집중력이나 인생의 균형, 정체성 같은 ‘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죠.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고 나면 인생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어요. 계속 답을 찾느라 불행의 늪에 빠지기 쉬우니까요.”
하라리 교수는 오는 9월 인류의 미래를 그린 ‘미래의 역사’를 내놓을 예정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협에 접근해보려는 시도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10살 내외의 아이를 대상으로 한 ‘사피엔스’ 기반의 역사책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