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티멘토(pentimento)라는 미술 용어가 있다. 유화 작가가 덧칠해 지운 밑그림 또는 그 전 그림이 나중에 드러나는 것을 가리킨다. 작품에 대한 엑스레이 촬영 등 과학적 분석 과정에서 발견되곤 한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은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일주일에 한 편 씩 시를 추천해 주다가, ‘시(詩)는 펜티멘토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긴 세월 자신도 몰랐던 진짜 얼굴이나 차마 말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감정을 다시 보고 느끼게 해준다는 이유에서다. 신간 ‘시를 좋아하세요...’는 그가 추천하는 시를 그림과 함께 엮은 책이다.
그가 미술관장으로서 쌓아온 큐레이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 시와 그림의 감성적 조합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과 이탈리아 출신 조반니 세간티니가 남긴 19세기 유화, ‘두 어머니’(1899~1900년 작)를 엮어 자식에게 헌신적이던 어머니에 대한 단상을 풀어낸다.
저자는 ‘엄마 걱정’에서 빈집에 혼자 남아 무서움과 굶주림에 지쳐 엄마가 돌아오기 만을 바라는 화자의 심정과, 자신이 엄마와 떨어져 혼자 남겨졌을 때 겪던 분리 불안증상을 연결시킨다. 기형도의 '엄마 생각'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처럼 강인하고 다정한 어머니 상도 그려냈다는 해설도 한다.
이를 세간티니의 ‘두 어머니’와 연결 짓는다. 젊은 엄마와 아기의 모습 및 이 모자의 뒤를 따라 걷는 어미 양과 새끼 양을 묘사한 그림이다. 사람 어머니와, 짐승인 엄마 양이 모두 숭고한 모성애를 지닌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림에서 엄마는 곤히 잠든 아기를 안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고 있다.
◇시를 좋아하세요...=이명옥 지음. 이봄 펴냄. 292쪽/1만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