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아이디어”라고 말하기 전, 새겨야 할 2가지 원칙

김고금평 기자
2020.04.25 06:30

[따끈따끈 새책] ‘룬샷’…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20세기 중반 협심증에 대한 치료법이 없었을 때, 일본의 연구자 엔도 아키라는 곡물 창고에서 발견한 청록색 곰팡이로부터 약물을 발견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알리자 일본에선 ‘위험한 부작용’을 거론하며 모두 외면했다.

하지만 제약회사 머크는 이 약물의 가능성을 살려내 1987년 최초의 스타틴 계열 약품, 메바코를 출시했다. 머크는 이 약품으로 지금까지 900억 달러(약 110조원)를 벌어들이며 가장 성공한 제약회사로 발돋움했다.

똑같은 아이디어를 두고 어떤 이는 ‘미친’ 아이디어라고 손가락질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으로 바꾸는 원동력으로 삼았을까.

저자가 내세우는 ‘룬샷’(loonshots)은 ‘상전이’라는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터(과학자, 개발자)의 창의적 발상과 관리자의 효율적 경영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이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새로운 경영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쓸모없는 발상이라고 외면받던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포착해 이를 시스템적으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정의와 원리는 이렇다. 물이 가득 담긴 욕조를 얼어붙기 직전으로 만든다. 어느 쪽이든 조금만 움직이면 전체가 얼거나 녹아버린다. 그 접점에서 얼음 덩어리와 액체 상태의 물이 공존한다. 상전이의 경계에서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하는 현상을 ‘상분리’라고 한다. 얼음과 물의 상태는 서로 나눠지면서도 여전히 연결돼 있는데, 어느 쪽 상태도 압도적이지 않은 순환관계를 ‘동적평형’이라고 부른다.

상전이의 원리는 2차 세계대전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1930년대 중반, 미군은 연구 예산을 전함 한 척 제조하는 비용의 20분의 1을 삭감했다. 나치 독일이 새로운 과학기술로 전쟁의 개념을 바꾸는 사이, 미군 장성들은 ‘소총을 든 보병’에 집착하며 민간인 과학자들의 주장과 경고를 무시했다.

MIT 부총장이던 부시는 쓸모없는 과학적 아이디어 수백 가지를 들고 루스벨트 대통령을 움직였다. 상전이의 원리를 들고서. 예술가(과학자)의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하되(상분리) 병사들이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분리하되 소통하는’ 조직을 설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조직 설계 덕분에 미군은 레이더 시스템부터 미사일, 핵폭탄까지 만들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저자는 창조적 괴짜들이 만든 혁신적인 발명품으로 과학기술과 기업의 운명을 바꾸려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혁신적인 발명품을 개발하는 그룹과 기존의 영역을 지키는 그룹 간의 ‘상분리’, 그리고 두 그룹 간에 협조와 피드백이 잘 오가도록 보장하는 ‘동적평형’이 그것.

5가지 실천적 원칙도 제시한다. ‘세 번의 죽음을 이겨내라’ 원칙은 다소 불안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묻어버리기보다 온실 속 화초를 키우는 것처럼 그 가능성을 격려하는 것이다. ‘문화보다 시스템을 만들어라’ 원칙에선 노키아와 애플의 사례를 참고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지구상 휴대폰의 절반을 팔아치운 노키아는 ‘신 나는’ 조직 문화에 힘입어 아무도 하지 않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터치스크린, 고해상도 카메라, 온라인 앱스토어까지 내놨지만, 경영진은 모두 묻어버렸다.

저자는 “3년 뒤 노키아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미친 아이디어가 스티브 잡스에 의해 구현되는 것을 목격했다”며 “룬샷은 창의성과 효율성이 서로 균형을 이룬 구조 안에서 육성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창의적 문화라도 효율적 시스템과 어우러져 선순환하지 않으면 전쟁이나 질병 같은 불황의 위기를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는 가장 현실적인 논리인 셈이다.

◇룬샷=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흐름출판 펴냄. 468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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