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수행 권한을 기획재정부에서 각 주무 부처로 이관하는 등 예타 제도의 '대수술'을 예고했다. 예타 수행에 독점적 권한을 갖고 있는 기재부가 지나치게 경제성 중심으로 사업을 평가하고, 지역균형발전 사업에 대한 고려도 부족하다는 것이 국회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회 뜻대로 각 주무 부처가 예타를 수행하게 될 경우 중립적 평가가 어려워 부실한 사업에 재정이 허투루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1999년 효율적이고 객관적인 공공투자 관리를 목적으로 예타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관련 법률인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이 원칙적으로 예타 대상이 되며, 예타 수행의 주체는 기재부 장관이다. 다만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는 기재부 장관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위탁할 수 있다.
예타 제도는 지난 20여년 동안 부실한 사업에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필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난 7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가 예타와 관련해 기재부에 "3개월 내 근본적 개선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하면서 제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다. 국회는 기재부의 독점적인 예타 수행 권한을 문제 삼고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기재위 종합국정감사에서 "대안을 내달라고 했는데 아직 진척이 없다"며 재차 기재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국회의 문제 의식은 지난해 김두관 의원이 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김 의원은 개정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국가사업에 대해 기재부 장관이 일률적으로 예타를 실시해 사업의 진행 여부가 비용·편익 분석과 같은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 의해 결정된다"며 "지역 간 균형, 형평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핵심 대안으로 △예타의 주체를 기재부 장관에서 각 중앙관서의 장으로 변경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사업 중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고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사업의 경우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예타를 실시 등 두 가지를 제시했다.
1999년 예타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각 주무 부처가 '타당성조사' 형태로 재정 투입 사업을 평가했는데, 이런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특히 지역균형발전 사업의 경우에는 기재부의 '깐깐한 경제성 평가'를 피해 비교적 수월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제도 개편이 이뤄져 기재부 견제가 사라질 경우 정치 논리나 각 부처 이해관계에 따라 부실한 사업이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덕도 신공항'의 사례처럼 특별법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입맛에 따라 쉽게 특정 사업에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국회는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통과시키며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부산 가덕도로 확정했다. 특별법은 필요시 예타를 면제하고 사전타당성 조사도 간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기재부는 예타 수행 권한을 넘기는 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정감사에서 김두관 의원의 관련 질의에 "예타의 수행 주체 변경 문제는 기재부보다는 각 주무 부처의 의견"이라며 "수행 주체가 다시 이전 방식(각 주무 부처가 수행)으로 돌아가는 것은 예타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기재부로서는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의뢰를 통해 실제로 예타를 수행하고 있는 KDI(한국개발연구원)는 2014년 말 발간한 '예비타당성제도의 현황과 발전방안에 대한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서 과거 각 주무 부처가 타당성조사 형태로 사업을 평가했던 것과 관련해 "정부 투자에 대한 객관적인 타당성 평가보다는 주무부처의 예산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돼 정부 투자의 비효율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도 김두관 의원의 국가재정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기재위는 "예타 수행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중립적인 시행이 필수적"이라며 "중앙관서의 장이 직접 예타를 수행할 경우 사업을 요구하는 부처와 예타를 수행하는 주체가 일치하게 돼 공정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두관 의원의 발의안대로 지역 사업에 대해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예타를 수행할 경우에는 예타 평가항목 중 '지역균형발전'에 편중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기재위 전문위원실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예산 편성권을 보유한 기재부가 소관 부처로서 일관된 기준, 원칙에 따라 예타를 총괄 수행하는 것이 내실있는 조사, 재정낭비와 사업부실 방지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기재부 의견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