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코 앞이니 전기료 동결"...한전, '만성 적자' 늪에 빠진 이유

세종=민동훈 기자, 조규희 기자
2022.05.30 06:20

[MT리포트]억눌린 전기요금의 역습②

[편집자주] 지난 정부 시절 물가안정을 이유로 억누른 전기요금이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시장의 원리를 거스른 대가는 혹독하다. 한전은 보유 부동산 자산, 자회사 지분 등 팔수 있는 건 모두 팔아 위기를 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 전력산업 시장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정부가 내년 2분기(4~6월) 전기요금을 '사실상' 동결했다. 29일 한국전력공사는 4~6월분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0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한전에 따르면 정부는 연료비 조정단가 유보 사유에 대해 "국제 연료가격 상승 영향으로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요인이 발생하였으나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전은 지난해 연말 발표한대로 4월부터 기준연료비 및 기후환경요금 인상분은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달부터는 kWh당 총 6.9원의 전기요금이 인상될 방침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계량기 모습. 2022.3.29/뉴스1

한국전력공사가 분기 8조원의 사상 최대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경영위기에 빠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무리한 전기요금 인상 억제에 있다.

지난 정부는 국제유가가 급등락할 때마다 한전의 실적도 널뛰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면서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가 공공요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원가주의'를 약속한 만큼 전기요금 부과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9일 한전에 따르면 정부가 2020년 12월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이후 6차례 이뤄진 요금조정 결정과정에서 요금인상이 받아들여진 것은 지난해 9월 4분기분 연료비 조정단가를 3원 인상한 것 전부다. 이마저도 2020년 12월 연동제 도입당시 직전 연료비 하락분을 반영해 3원 낮췄던 것을 원래 수준으로 돌려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기준연료비를 올해 2차례에 걸쳐 4.9원씩 9.8원씩 올리고 기후환경요금도 지난 4월부터 2원을 인상키로 한 것이 전부다.

분기마다 이뤄지는 전기요금 조정 과정에서 한전은 수차례 인상을 요구했지만 매번 물가당국의 벽에 막혔다. 현재 전기요금은 △기준연료비 △연료비 조정요금 △기후환경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연동제는 이중 연료비 조정요금을 직전 분기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최대 ±3원, 연간으로는 최대 ±5원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전은 연동제 도입이후 연료비 조정요금 결정 때마다 정부에 요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매번 물가 자극을 우려한 정부의 정무적 판단에 막혔다. 지난해 5월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 올해 3월 대통령 선거 등 선거일정이 빼곡히 차있었다는 것도 전기요금에 손을 대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이처럼 무력화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한전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전력망 등 필수투자는 지연되고 이로 인한 안정적 전력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전력협력업체의 경영난이 가중됨으로 인해 전력생태계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연료비 연동은 도입돼 있는데 제대로 작동 안한다"면서 "정치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제도에 따라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임의로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할 수 있는 조항을 현행 전기요금약관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전기요금약관에는 '국제 연료가의 급격한 변동이 있을 때 산업부 장관이 연료비 조정단가 적용을 일시 유보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그동안 전기요금을 자의적으로 억누를 수 있었던 근거다.

전기요금 결정을 담당하는 전기위원회의 위상과 독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 11월 발간한 한국 에너지정책에 대한 보고서에서 "전기위원회의 지위를 전력산업 규제기관으로 조정해야 한다"며 "요금설정과 시장 모니터링에 대한 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추가적인 역할에 맞춰 위원회 직원들의 권한 역시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최근 한 포럼에서 "전기위원회의 조직과 인력을 강화해 전기요금의 독립적 결정과 전력도매시장의 개선방향 제시 및 이행점검 등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연료비 조정요금 조정폭도 늘릴 필요가 있다. 애초에 '분기 기준 ±3원, 연간 기준 ±5원'의 조정폭이 널뛰는 국제유가의 흐름을 반영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한전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연료비 조정요금 조정폭을 분기 기준 ±5원, 연간 기준 ±10원으로 확대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기요금의 '가격신호' 기능을 회복할 필요도 있다. 해외 주요 전문기관들은 이상기후, 재생에너지 간헐성, 에너지자원 무기화 등으로 한동안 전력수급 위협요인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전기화,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 보급, 효율투자 등 탄소중립 과정에서 대규모 이행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합리적 비용 분담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지금처럼 전기요금을 억눌러서는 전기를 아낄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에너지자급률이 17%에 불과한 에너지수입국이지만 낮은 전기요금으로 전력소비는 세계 최상위, 에너지효율은 최하위 수준에 그친다. 적절한 가격신호를 통해 산업체의 효율향상 투자를 유도하고 에너지 비용 절감을 통해 기업의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최소한 3분기, 4분기 연료비 연동제 단가 정상 조정으로 요금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근본적으로 물가영향 등 정책적 고려를 최소화하고 원가주의·시장주의에 기반해 사업효율성을 유인할 수 있는 요금결정 체계 확립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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