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명으로 구성된 세브란스병원 뇌혈관팀을 책임지는 교수입니다. 4명중 제가 개두술(두개골을 절개해 뇌를 노출시켜 진행하는 수술)을 가장 많이 합니다. 인건비, 재료비 다 합해 수술원가의 104%를 소진합니다. 1년 내내 수술하면 병원에 4%의 손실을 끼치는 셈입니다. "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을 두고 김용배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 최고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제때 수술을 집행할 전문의가 없어 구성원이 죽는 의료 현실에 관한 고백이다. 생명을 구할 힘들고 어려운 수술일 수록 '수가(의료행위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가 낮아 해당 과 지원자가 없고, 있더라도 결국 돈을 벌 수 없어 개원조차 힘든 현실이 필수의료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비현실적 수가 체계가 만들어낸 기막힌 현실이다.
27일 대한의사협회와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뇌질환 수술 관련 수가는 일본의 20%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개내 종양적출술'과 '뇌혈관 내 스텐트 수술'의 수가가 각각 일본의 15.5%, 17.1%였다. '뇌동맥류 경부 클리핑(clipping) 수술' 수가는 21.2%였다. 일본 의사들이 해당 수술을 할 경우 공보험을 통해 100만원을 지원받는다면, 한국은 20만원 안팎에 그치는 셈이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제때 받았어야 할 수술이 일본의 21% 정도를 지원받는 '뇌동맥류 경부 클리핑 수술'이었다. 머리뼈를 여는 개두술을 통해 뇌동맥류가 정상 혈관과 맞닿은 부위에 티타늄으로 제작된 '클립'을 물려 묶는 수술법인데 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은데다 수술에 고도의 숙련도까지 필요하다.
게다가 낮은 수가는 이 수술의 핵심 장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 뇌혈관 수술 전문의는 "클리핑 수술을 하려면 클립이 필요한데 국내 단가가 태국의 절반으로, 공급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마진이 안남는다"며 "기존에 공급하던 일본 회사는 이 때문에 철수했고 독일 회사 하나가 유일하게 남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수술을 집행할 과에 지원자 마저 끊겨 의사가 부족할 모든 요건이 갖춰진 셈이다. '빅5' 대형병원으로 통하는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의 뇌혈관 질환 관련 의료진 비중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은 이처럼 생명을 구할 수술의 수가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낮은 역설적 환경이 필수 의료영역의 의사 수 부족 현상을 만들어 비롯됐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개두술이 가능한 뇌혈관 전문의는 2명 있는데 사건 당시 각각 해외와 지방에 체류중이었다. 당직 근무를 위해선 최소 3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 숫자조차 맞추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서울아산병원은 형편이 나은 축이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에 따르면 병원당 개두술이 가능한 전문의는 평균 1.6명이다.
한 상급병원 전공의는 "병원 내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조차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없다면 일반 응급환자의 경우는 어떨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최고 병원인 서울아산병원보다 의사 수가 부족한 절대 다수의 병원 어디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뇌수술 뿐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흉부외과 전공의 정원 확보율은 47.9%에 불과하다. 저출산 여파까지 겹친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생명을 구할 필수의료 영역 전반에서 의사 부족현상이 빚어지는 셈이다.
이들 과 역시 의사 부족의 근본 원인은 수가라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우리나라 기본 진료비는 미국의 팔분의 일 수준이며 초진료 기준으로는 일본의 절반 수준"이라며 "수가가 하도 낮다보니까 3차 병원급 이상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고용, 유지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필수 의료 영역의 의사 수 부족은 의료진 과로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번 대형병원 간호사의 죽음과 의사의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2018년 송주한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과로에 따른 뇌출혈로 연구실에서 쓰러져 자신이 전담하던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2019년 당직실에서 근무중 과로로 숨진 신형록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쓰러지기 전 1주간 근무시간은 113시간이었다.
비현실적 수가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며 간호사와 의사 등 의료진까지 사망하는 셈이다. 일단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의사들이 수술을 기피하는 고위험 수술과 소아·분만 등 수요감소 분야를 대상으로 수가를 끌어올리는 '공공정책수가' 도입 구상을 내놨다.
하지만 결국 수가 조정은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범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쉽지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영역의 수가를 끌어올리면 또 다른 영역은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건강보험 재정개혁에 준하는 일인 셈이다.
의료계 내에서 조차 직역별로 시각차가 갈린다. 간호계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와 달리 이번 대형병원 간호사 사망이 수가가 아닌, 전반적 의사 수 부족 탓에 빚어진 사건으로 보고있다. 의대정원을 늘려 전반적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 공공성이 제고된다는 것이 대한간호협회 등의 입장인데, 이는 의사단체가 격렬히 반대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필수의료 수가를 올려야 한다는데 동의하지만 의료계가 다 같이 공감하는 필수 의료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필수의료 분야 인원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며 "굉장히 어려운 문제로 좀 더 체계적으로 의료계와 정부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