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국 법원으로부터 연달아 위법 판결을 받으면서 관세를 기반으로 한 주요국과의 협상 전략도 흔들린다.
우리나라는 관세 인하를 대가로 미국에 3500억달러(약 500조원) 투자를 약속했는데 미국 관세가 최종적으로 무효 결정이 날 경우 대미 투자의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12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 재판부는 지난 7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전세계에 부과한 글로벌 관세 10%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글로벌 관세는 지난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법이라고 판결한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이다. 연방대법원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판단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글로벌 관세 10%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법원에서 위법 판결이 나오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점차 동력을 잃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로 불리는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으나 법원에서 연달아 위법 판결이 나온 만큼 후속 조치의 정당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끝내 무위로 돌아가면 주요국들이 미국과 체결한 관세합의도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미국이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미국에 수천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포함해 향후 10년 간 총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향후 4년 간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도 수입할 예정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췄다.
지난 3월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투자 프로젝트 선정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투자 프로젝트 협의를 위해 지난 6~9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한미 양측은 조선·에너지 등 그간 논의해온 프로젝트 구상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대미 전략적 투자 프로젝트 추진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대미투자특별법이 시행되는 다음달 이후 확정될 전망이다. 국내 기업에 강점이 있고 미국의 제조업 진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원전·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분야가 첫 투자 대상으로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독자들의 PICK!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흔들리면서 대미투자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관세의 명분이 사라진 만큼 대미투자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5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일본은 가스, 원유 인프라, 핵심 광물 등 분야에서 대미투자 사업을 먼저 확정했다. 하지만 6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EU는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투자 이행이 지연되고 있다며 EU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올리겠다 예고한 상태다.
다만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가 상업적 합리성에 기초한 만큼 국익 차원에서 도움이 될 사업은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원전,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대미투자가 미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 역시 최근 중동전쟁 등으로 에너지 수입처 다변화 필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중요한 전략적 카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