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별이 임원이라면, 공직사회의 별은 고위공무원이다. 과거 1·2급으로 불리던 고위공무원은 이제 가·나급으로 나뉜다. 실장급은 가급, 국장급은 나급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1·2급이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정무적으로 임명되는 장·차관과 달리 1급은 공무원이 승진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다. 일반직 공무원 약 18만명 가운데 1급은 올해 6월 기준 253명에 불과하다.
이 자리까지 오르는 길은 험난하다. 중앙부처 1급은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이다. 올해 행정고시 경쟁률은 37.9대 1, 시작부터 좁은 문이다. 합격자는 5급 사무관에서 출발해 보통 25년을 거쳐 1급에 오른다.
인사 적체가 심한 기획재정부의 경우 1급 7명은 행정고시 37~39회 출신이다. 37회 시험은 1993년에 치러졌다. '에이스'만 모인 기재부에서 동기, 선후배들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30년 가까이 버텨야 겨우 달 수 있는 별이 바로 1급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적 쇄신의 칼끝은 1급을 향한다. 공직 정점의 인사를 교체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쇄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1급이 바뀌면 국장급 이하에 승진 기회가 생긴다. 국장이 승진하면 또 다른 자리가 열리고 1급 1명이 바뀌면 수십 명의 연쇄 이동이 이어진다.
정책의 방향도 새 경로에 맞춰 조정된다. 지역화폐 정책만 해도 전 정권은 부정적이었지만 이번 정부는 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처럼 바뀐 정책은 수두룩하다. 인적 쇄신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1급들은 정권 교체기에 '일괄 사표'로 인사권자의 부담을 덜어왔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기재부를 시작으로 금융위 등에서 1급들의 사표 행렬이 이어진다. 정부 조직개편이라는 변수가 있었을 뿐 1급들의 일괄 사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 1급의 퇴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엔 일괄 사표를 내고 재신임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일부는 차관급으로 승진했고 일부는 산하기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관세청, 통계청, 조달청 등은 주로 기재부 1급 출신이 맡아왔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곳의 청장을 모두 내부 출신으로 채웠다. 기재부 1급 출신에게 더는 자리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다.
'왕 노릇'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은 기재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 12·3 계엄 이후 기재부 역할에 대한 반감 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재부 1급들의 사표가 현실화되고 있다. 앞으로 갈 수 있는 자리는 두세 곳에 불과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퇴로가 막힌 상황에서 퇴장을 고민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바늘구멍을 통과한 1급들은 국가와 국민이 키운 무형 자산이다. 능력을 갖춘 관료들이 정치의 파고 속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배제보다 활용, 포용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