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후위기시대, 폭군의 셰프는 '수소'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
2025.10.23 04:38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보며 에너지 세계에도 이런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 셰프가 폭군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듯,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에도 현명한 조력자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왕세자로 등극했다. 2024년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은 전력계통 안정성을 위협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 재생에너지라는 '폭군'을 성군으로 바꿀까? 여러 후보가 있겠지만 수소야말로 전력·산업·에너지 안보를 아우르는 다재다능한 셰프로서 그 역할이 기대된다.

국내 전력계통의 현실은 심각하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원자력발전의 출력을 낮추는 감발이 일상화되고 있다. 2025년 봄철 경부하기에는 매 주말마다 원전 감발이 시행되었고, 평일에도 네 차례 감발이 이루어졌다. 한빛원전은 올봄 전체 원전 감발량의 36.8%를 차지했다. 원전 감발은 시간당 3%씩 출력을 낮추고 80% 수준을 유지한 뒤 다시 복원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붕산을 투입해 핵분열 속도를 조절하는 이 작업은 경제적 손실 등을 초래한다. P2G(Power to Gas) 기술은 이런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수전해로 전력을 수소로 전환해 전력계통의 부하를 조절하고 에너지를 전환하는 것을 통해 전력계통에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다.

산업부문의 도전은 더 크다. 철강 및 석유화학산업은 전기요금 상승과 탄소감축 비용 증가라는 이중고 속에서 저탄소·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전기화가 어려운 이들 난감축 산업의 필수 감축기술이 수소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로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철을 생산한다. 포스코가 2030년까지 개발을 목표로 하는 'HyREX 기술'의 완성은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한 생존 조건이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국내생산 수소, 해외수입 암모니아가 친환경 연·원료로서 핵심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국내 수소 생산은 단순한 경제성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다. 과거 에너지안보는 석유·가스의 안정적 공급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안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국내에서 생산가능한 수소는 단순한 에너지 자원 그 자체를 넘어, 전력계통에 안정성을 제공하는 전략 자산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재생에너지가 성군이 되려면 수소라는 현명한 셰프가 필요하다. 수소는 전력계통 유연성을 높이고, 산업 탈탄소화를 실현하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한다. 원전 감발이 일상화되고 산업계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지금, 시간은 많지 않다. △수전해를 통한 국내 생산 △수입을 통한 수급 조절 △산업에서의 즉시 활용이라는 세 축의 통합적 추진만이 해답이다. 수소는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시대의 셰프로서 기후위기 시대의 폭군을 성군으로 바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책적 결단과 산업계의 적극적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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