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로 53~61%를 제시하자 산업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선 세제 혜택이나 산업 생태계 조성 등 실질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연구원을 통해 실시한 '주요 다배출 업종별 탄소중립 추진 현황 및 애로사항 조사' 연구용역에 따르면 산업계는 탄소감축 과정에서 설비투자 등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탄소를 줄이려면 감축 설비 확충이나 수소환원제철 같은 신기술 투자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이 발생해 기업 실적이 악화하고 해외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은 이미 글로벌 공급과잉과 업황 부진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감축 부담이 추가되면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철강산업은 국내 제조업 온실가스 배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다배출 산업이다. 최근 수요 둔화와 가격 하락으로 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고가의 저탄소 원료 사용으로 원가 부담까지 겹쳤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업 경쟁력이 떨어지면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에도 타격이 미칠 수 있다.
철강업계는 탄소감축을 위해 △전기로 확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고로 내 저탄소 연원료 사용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기술 개발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신기술 상용화에는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의 경우 2030년 30만톤급 실증설비 구축을 목표로 하지만, 상용화 시점은 불투명하다.
철강업계는 보고서에서 "현실적으로 2035 NDC 달성을 위해선 고로 공정 내 저탄소 연원료 사용, 스크랩 확대, 전기로 설비 도입이 현실적 대안"이라며 "하지만 고가의 저탄소 원료, LNG, 수소 등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산업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업계는 신기술 투자를 뒷받침할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위한 기술개발엔 설비투자와 매몰비용을 포함해 약 40조원이 소요된다"며 "기술개발뿐 아니라 관련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철스크랩 확대 등 감축방안을 활용해 생산한 저탄소제품을 인증하고 이를 수요산업이 선택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공공조달 부문에서 저탄소 소재 사용을 법제화해 초기 수요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주요 감축기술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기로 투자에 대해 3%의 투자세액공제를 제공하고, 탄소전환 투자 시 이자 지원을 확대하는 '녹색정책 금융활성화 사업' 선정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기요금 부담이 늘어날 경우 이를 보완할 지원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이달 초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내놓고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 지원, 테스트베드 구축, 신제품 우선구매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석유화학업계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 활성화 △가열로 전기화를 위한 친환경 전력 그리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멘트업계는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 폐기물 사용 확대를, 정유업계는 폐식용유 활용과 바이오항공유 제조를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해달라고 제안했다.
결국 산업계의 핵심 요구는 같다. 현실적인 감축목표와 병행해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해야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