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업은 기후변화, 재해, 가축질병 등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겉으로 보면 그러한 문제는 한 분야에 국한된 것 같지만 그 원인을 들여다 보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게 다반사다. 문제해결 난이도 역시 쉽지 않다. 실제 기후변화는 온도 상승뿐만 아니라 폭염, 호우 등 기상재해를 야기한다. 또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병해충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나의 문제는 끝이 아닌 또 다른 난제로 이어진다.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공공기관의 고민을 첨단기술을 보유한 민간 기업이나 국내외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풀어나가는 건 이같은 배경에서다. 특히 농업부분에 있어서 이런 시도는 문제해결과 함께 새로운 산업 창출로도 연결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밀 품종 연구 기간 단축을 위해 '스피드 브리딩(Speed breeding)' 기술을 개발한 것이 한 사례다. 농촌진흥청은 호주 연구진과의 국제협력 연구를 통해 호주의 봄밀에 적용되는 기술을 우리나라 겨울 밀에 적용했다. 결과는 대박. 국산 밀 품종 개발 기간이 46% 나 단축됐다. 해외 연구진의 기반 기술에 우리의 핵심 기술이 접목되면서 거둔 성과다.
구제역(FMD), 돼지열병(CSF), 소해면상뇌증(BSE) 등 한 번 발생할 때 마다 수 천억원에서 수 조원의 막대한 경제적 피해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였던 가축질병 분야에서도 이같은 협업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가축방역에 'K-반도체 기술'을 접목해 구제역 현장진단 시대를 연 농림축산검역본부와 옵토레인(OPTOLANE, 반도체 기술기반의 디지털유전자증폭 PCR 진단장비업체)의 공동연구는 대표적인 민관 협업 사례로 꼽힌다.
검역본부가 옵토레인과 함께 개발한 세계 최초의 바이오 반도체 기반 구제역 분자 진단키트는 지난 9월 동물용 의료기기 품목 허가를 받았다. 그동안 구제역 발생 최종 확진은 실험실 진단을 통해 가능했지만, 새로운 이동식 구제역 현장 정밀 분자진단 시스템을 활용해 실험실까지 이동하지 않고 현장 또는 이동중에도 구제역 확진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
양 기관은 구제역 발생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3년간 공동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복잡한 유전자 추출 과정 없이 구제역 진단이 가능한 키트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간이검사키트의 신속·간편함과 실험실 검사의 정확성이 결합된 연구 결과다.
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 김종완 구제역진단과장은 "기존에는 구제역 진단을 위해 현장 수거, 실험실에서 유전자 추출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최대 24시간이 소요되는 등 진단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번에 개발한 진단키트를 이용하면 구제역 의심 현장에서 약 1.7시간 이내에 감염여부를 진단할 수 있어 가축방역기관은 물론 지방정부의 신속한 초동 대처가 가능해 졌다"고 말했다 .
소·돼지 등 발굽이 짝수로 갈라진 우제류 동물에서 발생하는 구제역은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전염성이 매우 높고 치명적 피해를 유발해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는 구제역을 가축전염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단 감염되면 수포, 고열, 식욕부진, 폐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데다 바이러스 전염 범위가 육지에서 50km, 해상에서는 250km 이상으로 알려져 조기 진압이 관건이 돼 왔다. 국내에서는 올해 3~4월 전남 무안·영암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옵토레인이 개발한 CMOS 반도체 광학 센서기반의 유전자 증폭기술이 적용된 새 진단키트는 기존 진단법과 비교해 민감도가 최대 8배까지 높아져 저농도 구제역 바이러스를 빠르게 식별할 수 있다. 또 구제역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바이러스(SVV, SVDV) 등 6종의 바이러스를 동시에 감별하는 다중 진단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광학 및 열 제어 등 주요 핵심기능을 반도체 칩에 집약해 유전자 진단기기를 소형화함으로써 차량 이동 중에도 안정적인 분자 진단검사가 가능해 졌다. 진단 결과는 현장에서 데이터 공유기능을 통해 가축방역기관에 실시간으로 전송(휴대폰·PC)할 수 있어 구제역 발생에 따른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역관리가 가능케 됐다.
이같은 연구성과는 국제무대로 확장되고 있다. 검역본부는 주변국으로부터 유입되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규제하기 위해 아시아 4개국(방글라데시,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 및 영국을 대상으로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 옵토레인 플랫폼을 공급해 각국 현장에서 구제역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최정록 본부장은 "새로 개발한 구제역 분자 진단키트는 가축방역 분야에 바이오 반도체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의미 있는 성과"라며 "민간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가 방역체계의 디지털 전환은 물론 글로벌 표준화를 주도하는 K-방역 모델 확장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