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돼왔지만 비효율적인 자금 배분이 이뤄졌다고 한국은행이 지적했다. 지원 대상 기준이 생산성과 연관성이 낮은 매출 지표에 의존하면서 '선별' 지원보다 '보편' 지원에 가깝게 이뤄지면서다.
한은은 지원 규모를 늘리지 않더라도 기준을 매출에서 업력으로 전환하는식의 정책 효율화만으로도 총생산을 최대 0.7%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이 8일 발표한 '중장기 심층연구: 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과 지원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비효율을 개선하면 우리나라의 총생산이 약 0.4~0.7% 증가하는 것으로 시산됐다.
지원 규모를 늘리지 않고도 '누구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장기적인 잠재 성장 능력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기업수와 종사자수 비중은 99.9%와 80.4%로 절대적으로 높다. 2000년대 이후 벤처산업의 성장으로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 혁신 측면에서의 역할도 강화됐다.
다만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약 32%로 나타났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55%)에도 크게 못 미친다. 자본생산성도 하락세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기산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팀 과장은 "중소에서 중견기업으로 가는 성장이 지체되고 중견에서 중소기업으로의 회귀가 늘어나는 등 성장사다리가 약화되는 모습"이라며 "진입·퇴출률이 하락하고 한계기업 비중도 늘었다"고 말했다.
현행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규모가 큰 편이다. 정책금융을 중심으로 지원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돼왔다. 지난해 기준 정책자금(중소벤처기업부 소관)과 신용보증 규모는 1997년 대비 각각 5.4배, 7.8배 늘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 보증부 대출 비중은 6%에 육박한다. OECD 평균(1.4%)에 큰 폭 상회한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외형적 성과는 있지만, 생산성 측면에선 한계점도 명확하다. 한은은 현행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규모의존적 지원 △피터팬 증후군 △퇴출관련 제도 미흡 △사업중복 및 정책분산 등을 꼽았다.
현행 지원 기준은 생산성과 연관이 적은 매출 지표에 의존하고 있어 선별보다는 '보편 지원'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또 중소기업 자격요건이 정부의 지원·규제 대상 기업을 가르는 '문턱'으로 작용해 기업의 성장 회피를 유발한다는 문제도 있다.
아울러 연구진은 중소기업에 적합한 구조조정 제도가 없다보니 부실기업의 적시 퇴출이 지연되고, 그 과정에서 정부 지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은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구조적 개선을 제언했다. 지원정책의 비효율 개선으로 총생산을 약 0.4~0.7%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먼저 지원 기준을 매출이 아닌 업력으로 전환하면 생산성이 높은 저업력(7년 이하) 기업으로 지원 자금이 재배분되면서 총생산의 0.45%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터팬 증후군 완화 효과(0.06%)도 포함된다.
또 자산 매각·구매자 매칭 효율화와 구조조정 플랫폼 구축 등으로 구조조정 비용을 미국·일본 수준으로 낮춘다면 총생산이 0.23% 증가하고, 한계기업 비중도 0.23%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지원정책 선별기준을 생산성·혁신역량 등으로 두고 민간의 심사·투자 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피터팬 증후군을 유발하지 않는 보완 지표를 병행하고, 성장단계별 지원과 성과연계 인센티브 강화 등도 제안했다.
'부실 조기 식별→자율조정→질서 있는 퇴출' 등 구조조정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회생 가능 기업은 정상화를 돕고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적시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최 과장은 "향후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지원사업 수나 예산 규모 등 지원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대상 선별과 인센티브 구조 개선 등 생산성과 역동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