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신호를 줬다…안심이 부른 방심의 결과

최민경 기자
2026.04.03 04:15

[일상 덮친 워플레이션]④

[편집자주] 한동안 잠잠했던 물가(Inflation)가 깨어났다. 물가 상승은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실질 소득을 줄인다. 줄어든 실질 소득은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그 어떤 경제 지표보다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최근 물가 상황을 짚어본다.

"2025년 물가안정목표가 2.0%였는데 실적은 2.1%를 달성해 연간으로는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물가당국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두고 내린 평가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로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인 2.0%에 근접했고, 시장 일각에선 팬데믹 이후 이어진 고물가 국면이 마침내 진정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퍼졌다. 통화정책 기조도 완화 쪽으로 기울었다.

겉으로 드러난 소비자물가만 보고 물가 압력이 잦아들었다고 판단한 사이 물가는 다른 지표들에서 다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물가의 흐름은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고환율·고유가 국면에서는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가 먼저 오르고, 그 영향이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2월 생산자물가는 전월 대비 0.6%, 전년 동월 대비 2.4% 올라 6개월 연속 상승했다. 농림수산품과 석탄·석유제품, 금융·보험서비스 가격 위주로 상승했다. 국내공급물가와 총산출물가도 각각 전월 대비 0.5%, 0.9% 올라 생산 단계 전반의 비용 압력이 이미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수입단계에서도 이상 신호는 분명하다. 2월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1.1%, 전년 동월 대비 1.2% 상승해 8개월째 오름세를 이어갔다. 같은 달 평균 원/달러 환율은 전월보다 0.5% 낮아졌지만,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이 61.97달러에서 68.40달러로 10.4% 뛰면서 수입물가를 끌어올렸다.

2월 원재료 수입물가는 원유 등 광산품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전월 대비 3.9% 올랐고, 환율 영향을 제외한 계약통화 기준 수입물가도 1.5% 상승했다.

중동전쟁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전인 2월 수입물가부터 심상찮았던 것이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의 '2026년 경기 전망 국민 인식 조사'에서 '물가 안정'이 최우선 경제 과제로 꼽힌 것도 소비자물가지수와 체감물가의 괴리를 시사한다. 한국은행은 3월 이후부턴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함께 오르면서 상방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이란 전쟁에 따른 고유가 우려가 반영되자 기대심리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3월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7%로 전월보다 0.1%포인트 올라 5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같은 달 물가수준전망CSI도 149로 2포인트 상승했다.

경제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기업은 가격 인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가계는 비용 상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인플레이션이 더 넓게 번질 수 있다.

특히 시중에 풀린 돈도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다. 한은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광의통화(M2)는 4108조9000억원으로 전월보다 27조7000억원(0.7%) 늘었다. 한은은 지난해 통화량 산정 시 수익증권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기준을 바꿨지만 그 후에도 두 달 연속 증가했고, 증가폭도 전월 0.5%에서 확대됐다.

지난해 상반기 금리 인하 효과, 민간신용 증가, 재정지출 확대와 국채 발행 증가 등도 유동성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전쟁이 없었더라도 금융여건 완화와 시중 유동성 확대가 물가를 다시 자극할 토양은 이미 깔려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전쟁발 유가 급등과 원화 약세가 겹치며 물가 상방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