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짜 광기'와 '진짜 광기'를 비교하는 게시물이 인기를 끌곤 한다. 광기 어린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싶어 거짓된 행동을 하는 '가짜 광기'와 달리 '진짜 광기'는 일반인들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도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지칭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이하 '스마트폰')의 준영이야 말로 '진짜 광기'의 대표적인 예다.
'스마트폰'의 준영은 연쇄살인범이다. 휴대전화 수리기사인 준영의 타깃은 스마트폰을 분실한 사람. 술에 취한 누군가가 버스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리는 순간 계획은 시작된다. 준영은 스마트폰을 통해 주인의 개인정보를 파악한다. 노트 한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로 사소한 정보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주인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취미와 관심사 등을 파악해 믿음을 심는다. 저장된 정보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액정 수리를 빌미로 스파이웨어를 심어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후 주인의 인간관계를 하나둘 끊어 놓는다. 주인이 사라져도 한참 뒤에나 알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 과정을 마친 뒤에야 살인이 이루어진다.
'스마트폰'은 그 스토리만으로도 섬뜩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당장 내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려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게 되면 공포감을 넘어선 감정을 느낀다. 준영을 연기한 임시완 때문이다. 살인을 준비하는 준영은 차분하게 일련의 과정을 밟아 나간다. 마치 반복된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 사이 나미(천우희)는 준영이 파놓은 덫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간다.
살인을 준비하는 준영은 특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서양 속담에는 소리를 지르며 허세를 부리는 개보다 조용히 자신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개가 무섭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임시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섬뜩하다.
물론 준영의 감정이 내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청자들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감정이 분출된다. 준영은 자신의 정체와 범죄가 드러났음에도 장난을 친다. 인생이 망가져 분노하는 나미를 농락하는 모습이나 지만(김희원) 앞에서 죽은 아들의 모습을 연기하며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준영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 또한 법적 책임을 지겠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눈이 마주친 나미에게 "뭐"라고 외치는 모습은 단순히 짜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준영이라는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임시완의 눈빛이다. 준영의 눈빛은 보통의 악역이 가진 '광기 어린 눈빛'이 아니다. 준영의 눈빛은 오히려 맑은 쪽에 가깝다. 작품의 분위기와 벗어난 것 같은 임시완의 맑은 눈빛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들어온다. 그 눈빛이 더 소름 끼치는 것은 범죄의 당위성이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준영이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단지 "스마트폰을 주웠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스마트폰을 줍는 게 아니다. 스마트폰을 주웠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대단한 이유가 필요한 거냐"고 되묻는 준영은 맑은 눈빛을 통해 '진짜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맑은 눈빛으로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전작 영화 '비상선언'의 류진석과 닮았다. 당시 비행기 테러범 류진석을 연기한 임시완은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 눈빛으로 새로운 충격을 선사했고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류진석과 준영 모두 배경이 되는 서사가 잘 드러나지 않고 범죄의 당위성 역시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도 흥미롭다. 다만 류진석이 순간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한다면 준영은 감정의 동요 폭이 크지 않다. 그래서 더 무섭다.
사실 이제까지 임시완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청춘을 대변한 '미생'의 장그래, 억울한 누명을 쓴 '변호인'의 대학생 박진우, 비행기에서 생화학테러를 자행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비상선언'의 류진석 등 임시완의 눈빛은 한결같이 맑고 깊었다. 이번에는 그 눈빛을 '진짜 광기'로 풀어냈을 따름이다. 앞으로 임시완은 자신의 맑은 눈빛을 또 어떻게 풀어낼까.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