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퉁명하다. 무언가 억눌린 듯 뾰로통한 얼굴과 시시때때로 위로 치켜뜨는 두 눈은 소녀 특유의 매력으로 그려지는 천진난만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시인이 되고자 한 이 똑똑이 소녀의 부모님은 그가 성년이 되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고, 계부는 두 이복동생의 양육을 이 소녀에게 떠넘긴다. 엉겁결에 계부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게 된 소녀는 그래서 좀처럼 웃지 않고 늘 퍽퍽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소녀의 찡그린 얼굴은 철이 너무 일찍 들어, 인생의 쓴맛을 빨리 삼킨 탓이다. 그는 자신이 없으면 동생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자랄지를 알고, 때문에 자신을 붙잡는 계부의 얄팍한 속내를 알고도 이를 뿌리치지 못한다. 제 꿈까지 포기한 채 구태여 책임지지 않아도 될 존재를 껴안은 소녀는, 자신의 꿈 대신 희생을 취할 만큼 너무 크게 철들어 버렸고 그 때문에 어여쁘다.
‘폭싹 속았수다’의 소녀 애순(아이유)은 딱 겪은 풍파만큼 시큰둥하고, 속은 그보다 깊다.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아는 명석한 소녀의 헤아림과 열패감이란 그런 것이다. 대신 애순에겐 주먹을 불끈 쥐고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치기가 있다. 거기엔 힘들지언정 도무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정직함도 함께 있다. 애순의 눈빛에는 세상을 향한 조용한 반항과 단단한 결의가 스며 있고, 그것은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이따금 반대의 길을 택하는 호기로 발현된다. 예컨대 대학도 보내주고 시집(詩集)도 내주겠다는 동네 유지 상길(최대훈)과의 재취를 마다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는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의 존재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그리고, ‘드림하이’(2011)를 시작으로 경력 15년 차 배우로서 아이유는 자신의 몫을 똑부러지게 해낸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 아이유에게서 놀라게 되는 것은, 본 적이 없어 눈길과 마음을 더 내어주게 되는 낯선 얼굴로 또 한 번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점이다. 허름한 옷차림에 화장기 하나 없이 다크서클 짙게 내려온 얼굴로 배우 아이유를 달리 보이게 한 ‘나의 아저씨’(2018) 때보다도, 보호받아야 할 소녀가 아닌 누군가를 보호하는 언니이자 엄마의 모습을 한 ‘폭싹 속았수다’ 속 얼굴에 더 감탄하게 된다.
아이유는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이 일어서는 캔디(최고다 이순신)가 되기도 했고, 극 중 이름처럼 모든 게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보통의 소녀(예쁜남자)가 되기도 했으며, 제 현실처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톱스타(프로듀사)도 됐다가, 황제 아들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만큼 매력적인 여인(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기도 했고, 고고하지만 괴팍한 호텔 사장(호텔 델루나)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들에서 아이유의 연기가 모두 호평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점에서 아이유는 주연으로서 제 역할을 해냈고, 또 어느 지점에서 그 이상의 감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감흥의 행진은 ‘폭싹 속았수다’로 더한 동력을 받고 아이유를 더 미더워하도록 만든다.
아이유는 오랜 기간 중심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였다. 약간의 무명 시간을 겪고 모두를 소름 돋게 한 ‘좋은 날’(2010년)의 삼단 고음으로 스타덤에 오른 과거를 지나고 달려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그 모든 일에서 최고라 불리는 대체 불가한 연예인이 됐다. 시간 흐름에 따른 나이 변화가 여성 연예인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는 업계에서,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이들이 점점 입지가 줄어들 때 아이유는 오히려 활동 폭을 넓혀왔다.
언제나 모든 것에서 제대로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해온 사람. 현실이 애달플 지언정 세상의 쓸모 이상으로 인생을 살아내는 애순은 그래서 아이유가 걸어온 길과 맞닿은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는 여성 연예인을 둘러싼 욕망과 기대가 끊임없는 세상에서 1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더 뛰어오르며 단단하고 깊게 뿌리를 내렸다. 노래 한 곡, 작품 하나마다 아이유는 거듭해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여전히 설명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