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새로워야 하나? 젊어야 하나? 그것만이 정답인 것 같진 않다."
KBS 2TV 예능 ‘불후의 명곡’을 연출하는 박형근 PD는 지난 3월 진행된 700회 기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견 수긍이 간다. 쇼트폼 일변도인 콘텐츠 환경 속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긴 호흡의 예능은 분명 차별화된다.
하지만 반대로 물어보자. "TV는 새롭지 않은 장수 예능이어야 하나? 그것만이 정답인가?" 역시 그것도 정답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지상파가 지나치게 장수 예능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다.
‘불후의 명곡’은 지난 2011년 첫 방송된 후 15년 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박2일’은 이보다 더 긴 1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두 프로그램은 여전히 KBS의 주말을 책임지는 예능이다.
다른 지상파 채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MBC를 대표하는 예능은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이다. 평균 방송 기간만 10년이 훌쩍 넘는다. ‘나 혼자 산다’는 2013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지금도 MBC가 자랑하는 스타 탄생의 산실이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 1인 가구가 늘고, 연예인의 사생활을 비추는 관찰 예능 홍수 속에서 트렌드에 발을 맞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복면가왕’은 다르다. 명절 파일럿 예능으로 출발한 후 어느덧 10년째 방송되고 있는 ‘복면가왕’은 사실상 과거의 영광은 잃은 지 오래다. 시청률은 3∼4% 수준이다. 시청률보다 더 문제는 출연진의 이름값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숱한 연예인들이 출연해 가창력을 과시하고 홍보 목적으로 ‘복면가왕’을 노크했으나, 이제는 누가 가왕인지조차도 대중의 관심 밖이다. 한때는 미국, 프랑스 등 세계 60여개국에 포맷이 판매된 MBC의 효자 예능이었으니 격세지감이다.
‘라디오스타’는 MBC 예능의 맏형 격이다. 2007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어느덧 19년차를 맞았고, 지난 1월 900회 기념 간담회도 진행했다.
SBS 역시 ‘런닝맨’(16년), ‘미운우리새끼’(9년) 등 장수 예능들이 여전히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는 시즌제로 재편되는 예능 환경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최근 케이블채널 및 OTT에서 론칭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대부분 시즌제로 제작된다. 8∼12부작 정도로 만들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 후속편을 편성한다. 하지만 장수 예능은 여전히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이는 편성을 중시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숙명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청 안정성을 꾀하기 때문에 특정 프로그램이 약속된 요일, 시간에 방송된다는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을 선호한다. 신규 프로그램으로 이런 효과를 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1박2일’, ‘라디오스타’, ‘런닝맨’은 그 제목만으로도 각 프로그램과 채널의 정체성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빚은 결과다. 지상파 입장에서는 이런 전통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아울러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내로라하는 MC들의 이름값도 무시할 수 없다. 유재석(런닝맨), 신동엽(불후의 명곡), 김구라(라디오스타), 김성주(복면가왕) 등이 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섭외하기 쉽지 않은 이들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것은 이런 MC들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각 방송사들이 가진 운신의 폭이 넓을 수 없다.
물론 오랜 기간 방송됐다는 이유 만으로 폄훼되는 것도 옳지 않다. ‘미운우리새끼’는 12∼14%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다. ‘라디오스타’에는 좀처럼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이들이 출연하고 그들의 발언은 숱한 기사로 치환된다. ‘나 혼자 산다’는 스타 섭외가 아닌 참신한 신인이나 조연 배우들을 과감히 발굴하고 그들을 스타로 만들고 있다. 시즌제 예능이 수행하기 어려운 장수 예능 만의 영역이 있다는 의미다.
김구라는 ‘라디오스타’ 900회 간담회에서 "라디오스타’는 토크쇼를 표방한다. 예능 형태 중에서 가장 범용적인 형태 아닌가"라면서 "그 당시 ‘라디오스타’는 토크쇼를 지향했지만 정통은 아닌 리얼 기반의 스튜디오 토크쇼였다. (눈덩이를) 가볍게 작게 굴렸다. 방송사 입장서 효율도 중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수긍할 만한 자기 평가다. ‘라디오 스타’는 지상파 토크쇼의 명맥을 유지해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출연진의 개런티 외에는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다. 이런 효율성은 다른 장수 예능에도 적용된다. 정해진 포맷, 그리고 이미 지어진 세트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은 저비용 고효율 프로그램으로 분류된다.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지상파 입장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장수 예능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