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와 선녀’ 조이현과 추자현, 결국 하나의 신맥 [드라마 쪼개보기]

한수진 기자
2025.07.29 13:00
'견우와 선녀' 조이현, 추자현 / 사진=tvN

tvN ‘견우와 선녀’는 하나의 희생극과 하나의 참회극이 교차하는 드라마다. 세면대에 발끝을 들어야 겨우 거울이 보이던 나이부터 무당으로 살아온 성아(조이현)는 악귀가 깃든 첫사랑 견우(추영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신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반면 무속계의 스타로 이름을 날린 염화(추자현)는 자식의 상실과 신의 이탈, 신엄마와 애증을 겪으며 타인의 희생을 치러서라도 악귀를 신으로 받들려는 파국의 길로 들어선다.

성아와 염화는 같은 신엄마 동천장군(김미경) 밑에서 무속을 배웠다. 하지만 하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들의 비극을 위해 몸을 던진다. 이처럼 '견우와 선녀'의 이야기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간 서로 다른 물줄기가 다시 마주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견우와 선녀' 조이현 / 사진=tvN

먼저 물꼬를 힘차게 트는 쪽은 성아다. 첫 눈에 반한 견우가 곧 죽을 운명임을 알았던 성아는 자신의 일상을 내던진 채 악귀와 맞선다. 성아가 극 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살린다”는 말은 그가 택한 행복의 방식이다. 평범한 학교생활과 연애를 꿈꾸는 열여덟 소녀의 설렘과 기대가 함께 자라난, 좋아하는 사람의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첫사랑의 사수. 이때 성아의 희생은 사랑에서 비롯한 능동적인 결단이다.

그런 그가 끝내 견우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은 악신 봉수를 자신의 몸에 담고 사라진 그 마지막까지, 성아는 누군가의 내일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상황이 절박할수록 자신을 희생하는 성아는 끝까지 사랑이라는 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선택은 결코 단순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친부모에게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버림받았던 상처는, 오히려 그에게 더 많은 존재를 끌어안을 힘이 주었다. 그는 고통을 몰라서 밝은 것이 아니라 고통을 안고도 웃을 줄 아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성아의 “살린다”는 외침은 견우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버려진 존재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견우와 선녀' 추자현 / 사진=tvN

염화는 전혀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 그는 언뜻 보면 화려하게 치장한 성공한 무속인 같지만, 그 내면은 신과 사람 모두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얼룩져 있다. 염화는 자식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의심했고, 신조차 자신을 외면했다고 믿었다. 그에게 세상은 차갑고 신은 잔인했다. 그런 염화가 견우를 제물 삼아 악귀를 악신으로 만들려던 악행은 파국을 부를지라도 존엄을 회복하고 싶었던 한 인간의 절규였다.

그러나 끝내 제물이 된 건 염화가 끝끝내 미워할 수 없던 애증의 존재, 신엄마 동천장군이다. 동천장군은 염화의 죄와 상처를 기꺼이 감당하며 인간부적으로 스스로를 희생한다. 이때 염화는 자신이 밀어내려 했던 것이 사실은 끝까지 붙잡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파국의 끝자락에서 염화는 비로소 자신의 참회와 마주한다. 그래서 염화의 이야기는 너무 늦게 도착한 용서의 이야기다. ‘견우와 선녀’는 이렇게 한 사람은 희생으로 사랑을 증명하고, 다른 한 사람은 파국 끝에서 사랑을 되찾는다.

'견우와 선녀' 조이현, 추자현 / 사진=tvN

성아의 희생과 염화의 참회는 결국 존중받지 못한 존재들이 선택한 서로 다른 방식의 인간다움이다. 특히 염화의 존재는 이 사회가 얼마나 쉽게 연약한 이들을 악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성아가 염화를 끝까지 미워하지 않고 존중을 보이는 태도는 상징적이다. 악의 경계에 선 존재를 미워하기보다 품으려는 태도. 그 존중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끝내 말하고자 하는 포용이다. 때문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성아의 선택은 희생의 서사를 넘어 구원의 서사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는 누군가의 진심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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