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염정아와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최근 시선을 모으는 JTBC ‘첫, 사랑을 위하여’(극본 성우진, 연출 유제원)를 보다 보면 유독 떠오르는 그의 표정과 답변이 있다. 늘 설득력 있는 연기력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 배우이기에 “제일 잘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던졌던 날인데, “사랑을 주는 거”라며 예상 밖의 답을 하며 싱긋 웃던 그를 잊을 수가 없다.
두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는 따뜻한 엄마의 얼굴이었다. 극중 극단적인 교육열로 극성을 부리던 엄마를 완벽하게 그려내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SKY캐슬’(2018) 끝에 가진 인터뷰였기에 더욱 기억에 남았다. ‘첫, 사랑을 위하여’를 보고 있노라면 그때의 답변이 이번 연기로 발현되는구나 싶다.
‘첫, 사랑을 위하여’는 직장에서 막 쫓겨난 40대 싱글맘 이지안(염정아)과 뇌종양 판정을 받은 20대 딸 이효리(최윤지)가 새로운 인생을 꾸리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드라마든 영화든 엄마로 등장하기 부지기수였던 염정아는,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에 전혀 다른 결의 엄마를 연기한다. 특히, ‘SKY캐슬’에서도 그랬고, 최근 종영한 ‘아이쇼핑’에서도 모녀 관계를 그린 염정아는 이번에 전혀 다른 궤적의 엄마와 딸 이야기를 펼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훅 빼앗고 있다.
염정아가 맡은 지안은 거친 공사판에서 현장소장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 근성은 말할 것도 없고 시원시원한 성격과 의리까지 겸비해 건설 현장에서 인기 만점이다. 알고 보면 죽은 친구의 딸을 데려다 키우면서 미혼모로 억척같이 산 세월이 그를 견고하게 세웠다. 말로 설명 안 해도 삶의 고단함이 켜켜이 쌓여있을 게 뻔한 지안이지만, 그래도 딸이 의대에 척! 하고 들어가줘 이제 남부러울 게 없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효리는 뇌종양이라고 하고, 회사에서도 잘리게 되면서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게다가 효리와는 계속 옥신각신한다. 일하느라 딸을 잘 챙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딸을 잘 모른다고 생각지 않았던 지안은 삐딱선을 타는 효리에게 그저 농으로 대응하다 결국 눈물로 읍소하며 화해에 이르렀다.
효리는 효리대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기는 여느 청춘과 다르지 않았고, 엄마에게 말 못하는 상처도 깊다는 사실을 그제야 듣게 됐다. 서로 앞에서는 늘 괜찮은 척하느라 “닿기를 포기했던 마음이” 그렇게 하나씩 무너져 포개어졌다.
지난 4회 동안 염정아는 이러한 폭풍 같은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펼쳐내며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신예 최윤지와 현실 모녀 케미스트리를 일으키며 일상적인 툭탁거림부터 눈물로 마주한 회한의 순간까지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모녀 이야기로 몰입도를 높였다. 이들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의 파도에 올라탔다가 위로와 힐링의 순간을 맞게 된다.
더욱 감동적인 건 염정아가 드라마 전반으로 뻗어내는 케미스트리의 파장이다. 염정아는 인간미 만렙인 지안을 그리며 호흡을 주고받는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도 빛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만들고 있다. 물론 대본과 연출까지 삼박자가 잘 맞는 덕분이겠지만, 염정아가 구심점이 되어 훈풍을 일으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염정아는 마주하는 배우들 한명 한명에게 손을 건네듯 각각의 케미스트리를 이끌며 그 온기를 시청자들에게까지 전달하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도 그렇고 현장과 회사에서 확인되는 사회인 이지안은 치켜들 엄지손가락이 두 개뿐인 게 아쉬울 정도로 대단한 강단과 능글능글한 생활력의 소유자다. 그런가 하면 절친이자 마음의 버팀목인 함바식당 사장 김선영(김선영)과 보이는 티키타카는 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의 짝꿍이다. 때론 개그 콤비로 웃음을 자아내고, 때론 말없이 이심전심하며 의지가 되어주는 소울메이트로 눈물을 글썽이게 한다. 재회한 첫사랑 류정석(박해준)과의 케미스트리는 담담한 듯 설레고 유쾌하면서도 믿음직하다. 향후 어떤 불꽃이 피어올라 새로운 로맨스에 돌입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2회에서 큰 울림을 준 황반장(정만식)과의 호흡도 매우 소중하다.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잠적했던 황반장에게 지안은 “숨이 꼴깍꼴깍 차오르는” “그때 사람 살리는 게” 사람이라면서, “사람이 숨을 틔워주더라”며 듣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안은 더 큰 감동을 안겼다. “우리 딸은 나한테 호구라던데, 나 호구 아니고, 로맨티시스트야. 그래서 나는 기적을 믿거든요. 기적이 뭐 별건가? 우리 같이 빽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이 호구 소리 들을지언정 잠시라도 서로 살게 해주는 거, 그게 기적이지 뭐. 내가 3000(만원)짜리 기적 대여해 준 거니까 다시 반납해요. 기적은 리사이클링하는 거야. 돌려써야 하니까 천천히 살아남아서 돌려주세요.”
결국 ‘첫, 사랑을 위하여’는 절망과 좌절 앞에서 선 사람을 살리는, 사람 이야기이자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용기와 온기를 전해주며 기적을 주고받는 이야기. 다만, 서로에게 건네는 그 따뜻한 손길을 드라마는 제목에서 ‘사랑’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염정아가 그 여정을 이끌며 시청자들에게 놀라운 감동의 파고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을 주는 거”라고 했던 게 무색하지 않게, 염정아는 사람을 향한 온기와 진심을 뿜어내며 드라마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확장하고 있다. 작은 선의가 기적을 만든다고 믿는 로맨티시스트의 따뜻한 이야기 ‘첫, 사랑을 위하여’가 염정아의 탁월한 연기에 실려 그 어느 때보다 친밀하게 시청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조성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