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 개막하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서른돌을 맞은 BIFF는 올해 무려 64개국 328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수많은 화제작과 숨은 걸작을 발굴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방대한 상영작 앞에서 방향을 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영화제를 대표해 작품을 선별해 온 BIFF 프로그래머들이 직접 관객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들을 섹션별로 엄선해 소개한다.
▲ 갈라 프레젠테이션
거장 감독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으로 구성된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얼굴 역할을 해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세계 영화사의 한 축을 대표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미국)이다. 델 토로는 '판의 미로'와 '셰이프 오브 워터'를 통해 기괴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는 미학을 구축해 온 감독으로, 이번 작품은 그의 세계관을 집대성하는 출발점이자 정점으로 평가된다.
일본에서는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국보'(일본)가 주목된다. 가부키라는 일본 전통문화의 세계를 배경으로, 예술적 열정과 파멸을 동시에 끌어안는 인물들의 애증을 밀도 높게 그려낸다.
이란을 대표하는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이란)은 인간의 내면을 정면으로 겨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던 인물이 과거의 폭력과 마주하면서 시작되는 복수극은, 피해자가 어느 순간 가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회적 역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변성현 감독의 신작 '굿뉴스'(한국)가 책임진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 등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1970년대 항공 납치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주연 배우 설경구와 홍경의 조합은 신뢰감 있는 연기 시너지를 예고한다.
▲ 오픈 시네마
오픈 시네마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신작과 국제적인 관심을 모은 화제작을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하는 섹션으로, 매년 관객 친화적 라인업을 선보인다.
해당 섹션의 추천작으로는 먼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초속 5센티미터'(일본)다. 이 작품은 첫사랑과 이별, 성장, 그리고 시간과 거리에 얽힌 이야기다. 마츠무라 호쿠토의 출연으로 '만찢남'의 매력을 더하며 청춘 멜로의 감성을 새롭게 소환한다.
'오빠를 들고 갈 수 있는 사이즈로'(일본)는 미워하던 오빠의 죽음을 배웅하는 여동생의 나흘간 여정을 따라가며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낸다. 가족이니까 해야 할 말들, 그러나 가족이기에 오히려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에 대해 신선하게 묻는다.
'파이널 피스'(일본)는 일본 전통 장기인 쇼기를 소재로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영화다. 청춘 스타 사카구치 켄타로와 원로 배우 와타나베 켄이 만들어내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세대의 교차가 빚어내는 긴장감을 보여준다.
'포풍추영'(홍콩/중국)은 첨단 감시망을 뚫고 수십억을 탈취한 범죄 조직과, 이를 추적하는 소수정예 감시팀의 숨 막히는 추격과 액션을 그린 액션 범죄 블록버스터다. 성룡과 양가휘의 액션 호흡에 세븐틴 멤버 준이 합류해 세대를 넘어선 오락성과 스타성을 동시에 구현한다.
마지막 추천작은 '짱구'(한국)다. 이 영화는 비공식 천만 영화라 불리는 '바람'의 후속작이다. 배우 정우가 오성우 감독과 공동 연출을 맡아 청소년의 성장기를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내 관객 친화 섹션의 취지를 가장 충실히 담아낸다.
▲ 온 스크린
온 스크린은 영화의 확장된 흐름과 가치를 포괄해 매년 그 해의 최신 드라마 시리즈 기대작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부문이다. OTT와 스크린의 경계를 허물고, 시리즈물이 지닌 서사적 깊이와 영상적 완성도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체험하게 한다.
서기와 리신제가 주연한 '회혼계'(중국)는 사랑하는 딸을 잃은 두 엄마가 딸의 복수를 위해 사기 조직의 두목을 되살리면서 시작되는 여정을 그린다. 딸을 잃은 두 엄마의 극한의 감정과 액션을 만나볼 수 있다.
'친애하는 X'(한국)는 지옥에서 벗어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면을 쓴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의 이응복 감독의 연출과 올해 액터스 하우스에 참여하는 김유정의 주연작으로 탄탄한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당신이 죽였다'(한국)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전소니, 이유미가 주연을 맡았다.
'탁류'(한국)은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감독의 시리즈 데뷔작으로, 조선의 경강을 둘러싸고 혼탁한 세상을 뒤집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각기 다른 꿈을 꾸는 이들의 운명 개척기를 그린다. 박진감 넘치는 활극을 경험할 수 있다.
▲ 비전
비전 섹션은 뛰어난 작품성과 독창적 비전을 지닌 한국과 아시아의 독립영화 최신작을 소개하는 장으로, 신예 감독들의 실험적 시도와 대담한 목소리가 집결하는 무대다.
올해 아시아 비전 부문에서는 발칙하고 패기 넘치는 성장 영화들이 주목된다.
'올 그린스'(일본)는 시골 여고생들이 동호회를 결성해 학교 옥상에서 수상한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그리며 청춘의 호기심과 반항심을 유쾌하게 담아낸다.
'말리카'(카자흐스탄)는 가부장적 소수민족 가족 안에서 엄마의 재혼 문제를 둘러싼 소동을 통해, 어린 말리카가 어쩔 수 없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콕콕콕, 코코콕'(인도)은 아웃사이더들의 관계를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사랑 이야기로, 독창적 서사의 힘을 보여준다.
'모모의 모양'(인도)은 히말라야 산맥 아래 살아가는 모녀 삼대의 삶을 담백하고 잔잔한 시선으로 담은 작품으로, 트리베니 라이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운 연출력이 돋보인다.
'쿠락'(키르기스스탄)은 키르키스스탄 여성 감독의 공동 연출작으로 또다른 감독은 작업 중에 타계해 그의 유작이 됐다. 키르키스스탄 여성들의 힘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 비전 부문 역시 굵직한 작품들이 포진했다.
전작 네 편 모두 BIFF에 소개됐던 이광국 감독의 '단잠'은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극복하며 삶의 온기를 찾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다시 한 번 따뜻한 시선을 드러낸다.
'산양들'은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인혜, 서희, 정애, 수민이 학교 근처 비밀평원에서 우정을 키워나가는 성장담을 그린다. 고3 여학생들의 귀엽지만 단단한 성장 서사를 통해 청춘 영화의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흐르는 여정'은 삶과 죽음, 가족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으로, 노년의 여인과 두 청년이 서로의 곁에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김혜옥과 저스틴 민의 호흡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