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을 잇는 온기...손명오에서 상학으로, 김건우

정명화(칼럼니스트) 기자
2025.09.25 08:00
김건우, 사진출처=김풍의 안 본 눈 삽니다 영상 캡처

이야기의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남자. 화면 속에 그가 등장하는 순간, 서사는 풍성해지고 감정의 결은 더 깊어지며, 주변의 공기는 따스함을 머금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서 상학은 그런 인물이다. 너무 투명하고 건강한, 악의라곤 찾을 수 없는, 순수하고 맑은 청년.

전작과는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이름 ‘상학’을 얻은 배우 김건우는 매 작품에서 이야기의 느낌을 한껏 끌어올리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가 등장하면 공포는 더 강렬해지고, 웃음은 더 커진다.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여 더 크게 내뿜는 듯, 그는 특별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김건우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 '더글로리'에서 그는 학교폭력 가해자 손명오 역을 연기했다. 비열하고 거칠며, 권력과 욕망 앞에서는 굴종하는 불안정한 인물이다. 거칠고 야만적인, 누구보다도 폭력적이면서 야망과 생존 본능으로 비틀린 악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 사회의 계급 체제에서 가장 밑바닥에 머물며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입체적인 악역’이다. '더글로리'의 여러 배우들처럼 김건우라는 이름 대신 손명오로 각인됐던 그가 새로운 이름, 낯선 얼굴로 돌아왔다.

'은중과 상연' 비하인드컷, 사진제공=넷플릭스

두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섬세하게 엮어낸 '은중과 상연'에서 김건우는 두 인물의 청춘과 사랑의 기억을 함께 나눈 김상학 역을 맡았다. 상학이라는 이름은 극중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손명오만큼이나 강렬한 이름 상학을 얻은 김건우는 두 여자 사이에서 그들이 관통한 젊음과 상처에 온전히 스며들어 조용히 균형을 맞춘다.

전작과 같은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도로 손명오와 김상학의 간극은 크다. 상학은 따뜻하고 유쾌하며 부드러운 첫사랑 선배로, 작품에 온기를 불어넣는 인물이다. 야비한 미소와 번뜩이던 눈빛, 날이 서 있던 얼굴은 부드럽게 다듬어지고, 밝고 순수한 에너지로 채워진다.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순수하고 건강한 ‘상학’은 섬세하고 미묘한 두 여자의 감정을 감싸 안으며 포근한 온기로 멜로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이렇게 서로 결이 다른 인물들을 통해 김건우는 그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조용히 과시한다. 한쪽 끝에서 극한의 폭력성을 섬세하게 연기하던 배우가 이제는 반대편에서 다정한 선배의 자리를 진심으로 채워내는 순간을 확인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다정한 목소리에는 순정을 담고, 따뜻한 미소에 여심을 설레게 하며 손명오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강렬한 인물을 만들어낸다.

'은중과 상연', 사진제공=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에서 상학은 두 주인공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그들 내면에 자리한 질투와 선망을 외면으로 끌어올리는 인물이다. 은중의 첫사랑이자 상연의 오빠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 상학은 은중과 상연의 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무의식 속에 자리한 감정을 터뜨리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아프고 그립고 애달픈 추억을 소환하는 캐릭터다.

김건우는 말 없는 표정, 눈빛, 작은 몸짓, 머뭇거림 디테일로 상학이라는 인물에게 생명력을 준다. 은중과 상연과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나 깊이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멜로의 설렘을 가져다준다. 상학은 손명오의 거친 모습과는 다른 김건우가 자신의 연기 인생에 새겨 넣은 또 하나의 결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살피고, 그 속에 자신을 자유자재로 드러내거나 숨기며 완급을 조율하는 그의 재능이 앞으로 보여줄 캐릭터들에도 기대를 모으게 한다.

정명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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