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신작 영화 ‘얼굴’이 24일까지 약 80만 관객을 모았다. 지난 11일 개봉한 후 2주 만이다. 유명 배우가 등장하는 장편 상업 영화 임을 고려할 때, 통상적으로 "100만 고지도 밟지 못했다"는 보도가 쏟아질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이 영화를 향한 칭찬이 쇄도하고 있다. 초저예산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극장으로 가는 관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돈버는 영화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가득한 상황 속에서 ‘얼굴’은 확실하게 돈버는 방식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모든 영화를 이같은 방식으로 만들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는 충무로 부활을 위한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얼굴’의 ‘두 얼굴’을 짚어보자.
‘얼굴’은 24일까지 매출 82억6347만 원을 기록했다. 제작비 2억 원에 홍보·마케팅 등 P&A 비용을 제하더라도 일찌감치 흑자로 돌아섰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성편’, ‘모노노케 히메’, ‘명탐정 코난:17년 전의 진상’ 등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공세 속에서 개봉 후 줄곧 박스오피스 정상을 수성하며 한국 영화의 자존심도 지켰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 이후 충무로는 ‘제작비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소위 ‘대작’이라 불리는 200억∼300억 원 규모의 작품수는 크게 줄어들었고, 100억∼150억 원 수준으로 키맞추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561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 흥행을 일군 ‘좀비딸’은 순제작비 110억 원에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더하더라도 140억 원 언저리에서 총제작비가 형성됐다.
‘좀비딸’ 역시 비싼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얼굴’은 이와 비교할 때, 2% 수준의 제작비만 썼다. 집안 살림이 궁핍해 밥 한 공기가 대신 밥 반 숟갈 정도 먹은 셈이다. 제작비 2억 원, 촬영 13회, 스태프 20여 명. 103분 분량의 영화를 만드는데 투입된 인원과 제작비다. 당초 투자에 난항을 겪던 연상호 감독은 "감독으로 갖춰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거기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걸 탈피하지 못하면 앞으로 영화 찍기 힘들 수도 있겠다 싶더라"면서 새로운 제작 형태를 고민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그렇다면 ‘연상호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배우들은 ‘노 개런티’였고, 스태프는 최저 시급을 받았다. 촬영장을 오가며 쓰게 되는 실비 정산만 받는 수준이었다. 업력이 상당히 쌓인 베테랑 스태프들의 몸값도 ‘역주행’했다.
하지만 ‘얼굴’은 독립 영화가 아니다. 영화 지망생들의 습작도 아니고, 해외 영화제 출품을 목적으로 제작되지도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엄연한 상업 영화다. 그러니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
대신 그들은 ‘지분’을 받았다. 통상적으로 영화는 투자자와 제작사가 수익을 6:4 정도로 나눈다. 자본가들이 60%를 가져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은 대형 자본을 거둬내면서 사비를 투자한 연상호 감독과 제작사가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이를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확한 지분 배분 비율은 대외비라 알 수 없지만 박정민 등 주연 배우는 10% 이상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굴’은 일단 성공에 방점을 찍었다. 고위험 고수익 금융상품에 비유할 만한데, 이미 상당한 수익을 내면서 참여 배우와 스태프들이 지분을 바탕으로 두둑한 보수를 챙기게 됐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성공 모델보다는 ‘연상호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연 감독은 앞서 ‘사이비’, ‘돼지의 왕’ 등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 생산에 특화된 인물이다. 게다가 다수 애니메이션을 만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콘티를 탄탄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메라 구도 및 배우들의 동선 등을 미리 설정해둔 콘티가 있었기에 통상 50∼60회차에 이르는 촬영을 13회차로 줄일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역량을 갖지 못한 감독이나 제작자가 ‘연상호 모델’에 도전했다가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애초에 개런티를 받지 않고 참여하겠다는 배우나 스태프를 구하기도 어렵다. 연상호 만큼 믿을 만한 감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막상 제작에 돌입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내지 못하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오히려 제작 일정이 연장되며 예상보다 제작비가 천정부지 솟을 수도 있다. 그 비용을 감당 못하면 영화 제작이 중단되고, 개봉조차 못하면 그동안 투입된 노동력에 대한 대가 역시 없다.
또한 제작 현장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인력이 적다는 것은, 각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꾸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렵게 개선해놓은 영화 노동 환경이 불황을 이유로 역행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각설하고, ‘얼굴’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충무로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시도와 벤치마킹은 더 큰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