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가 눈을 감았다. 향년 74세. 아까울 나이다. 생의 90%가 넘는 69년간 배우로 살아온 그의 삶에는 숱한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무엇 하나로 그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었다. 누구나 본받을 만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래서 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이를 뜻하는 구도자(求道者)라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영화였다.
고인의 삶을 4가지 키워드로 ‘감히’ 정리해본다.
#영화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한 고인이 카메라 앞에 처음 선 건 1957년이었다. 불과 다섯 살.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 배우로 참여했다. 이 때 얼마 전 숨진 원로 배우 김지미와 함께 했다. 그리고 혈액암 투병 중 촬영했던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2023)가 그의 유작이 됐다.
성인 배우로서 그의 필모그래피는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작품은 당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대종성 신인상을 받으며 안성기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이후 2년 뒤에는 영화 ‘철인들’로 이 시상식에서 첫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1980년대 안성기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고래사냥’(1984) ‘칠수와 만수’(1988) ‘태백산맥’(1994)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안성기는 상업 영화에서 보다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충무로의 도약기와 맞물린다. ‘투캅스’(1993) 시리즈는 한국형 코미디 영화의 탄생을 알렸고, 빼어난 영상미가 돋보였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를 거친 후, 2003년 공개한 ‘실미도’는 한국 영화 역사상 첫 1000만 고지를 밟았다. "날 쏘고 가라"는 여전히 고인의 최고 유행어다. 이후에도 안성기는 ‘라디오스타’(2006)와 ‘부러진 화살’(2012) 등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겸비한 작품으로 충무로를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2013년에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또한 고인은 영화 시장 수호를 위해 앞장섰다. 2000년부터 스크린 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으로 활동했고, 2006년에는 스크린쿼터 비상대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조용히 은인자중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 바른생활
스타가 짊어진 왕관의 무게는 무겁다. 부적절한 말 한 마디로도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그 무게를 알고 있는 안성기는 항상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60년 넘는 배우 세월 동안 스캔들 하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고인은 누구에게도 불편함을 주거나 빚을 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작품 제안을 거절할 때는 사과와 함께 정확한 이유를 말했다. 겹치기 출연도 없었다.
한 커피 브랜드의 모델로는 30년 넘게 활동했다. 그는 처음 모델 제안을 받고 고민했다. 자칫 상업적 이미지가 작업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당시 절친했던 배창호 감독은 "상업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으로 시작된 이 커피 브랜드의 인연이 2020년대까지 이어졌다.
평소 연예부 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던 그는 "배우들의 이미지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살려 노력했다. 배우는 연기로 잘 살면 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평생 실천했다.
#의리
충무로에는 "안성기가 오면 행사를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웬만한 영화 관련 이벤트에는 그가 빠지는 일이 드물고, 그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성기는 사람을, 영화를 챙겼다.
그랬던 안성기의 모습이 지난 2019년 이후 뜸했다. 당시 그가 혈액암 투병을 겪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다소 수척해진 모습으로 대중, 언론 앞에 서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러웠을 법하다.
하지만 안성기는 주저하지 않았다. 2022년에는 배창호 감독의 특별전, 2023년에는 정지영 감독의 회고전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영화를 떠난다는 생각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영화를 많이 사랑하고 좋아한다. 영화를 통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고인은 영화 촬영 현장의 막내 스태프까지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라디오 스타’를 함께 한 이준익 감독은 한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서 "고인은 영화 밖에서 영화를 함께하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아름다웠다"면서 "그 귀한 마음씨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드리고 싶다"고 추모했다.
# 국민 배우
숱한 배우들에게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안성기만큼 이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는 없다. 오랜 기간 한 우물을 팠고, 남녀노소 누구나 알고 있으며, 존경받을 만한 삶을 알았다.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고인도 이 수식어를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해석하는 ‘국민 배우’는 다소 다르다. 고인은 "전 국민배우가 맞다. 전 팬클럽도, 극성 팬도 없다"면서 "전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한다. 미소로 인사하면서 지나가는 분들, 그 분들이 제 팬이다. 확 타오르는 건 없지만 은은한 온기를 보내준다. 참 고맙다"고 말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별그리다다.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5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