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샘 대신 침샘과 땀샘, 그리고 웃음보를 사정없이 자극하는 영화가 온다. 극장가에 Y2K의 묵직한 베이스와 예측 불허의 코미디 폭탄을 투하할 '와일드 씽'(감독 손재곤) 이야기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각 잡고 망가지기를 결심하면 어떤 재미를 유발할지 궁금하다면 바로 '와일드 씽'을 보면 된다. '와일드 씽'은 그 위험하고도 아찔한 호기심에 100% 만족스러운 정답을 내놓는다. 그야말로 '감다살' 캐스팅이 빚어낸 무아지경의 코미디 롤러코스터다.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 건지 감도 안 올 만큼 배우들은 체면도 이미지도 내려놓고 웃음 하나에 전력 질주한다.
영화의 뼈대는 심플하고도 쫄깃하다. 1990년대~2000년대 가요계를 씹어 먹었던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 데뷔곡 하나로 음악 방송 1위를 거머쥐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된다. 그리고 20년 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팍팍한 삶을 견뎌내던 이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동아줄 같은 재결합 콘서트 제안이 떨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댄스 머신이었던 리더 현우(강동원)는 인지도 바닥을 치는 짠내 폭발 생계형 방송인이고, 센터 도미(박지현)는 새장 속에 갇힌 재벌가 며느리 신세다. 폭풍 래퍼를 꿈꾸던 막내 상구(엄태구)는 솔로 앨범 폭망 후 빚더미에 앉은 쭈구리 보험 설계사가 됐다. 이들은 '전쟁이 터져도 오늘 우리는 무대에 선다'는 비장한 각오로 강원도 엑스포를 향해 직진하지만, 이들의 로드무비는 가는 길마다 지뢰밭이다.
가장 압권은 주연 배우들의 다 내려놓은 뻔뻔함이다. 비주얼 제왕 강동원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 대역 없이 헤드스핀과 윈드밀을 돌며 관객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스크린에서 피비린내 좀 풍겨본(?) 엄태구는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랩을 뱉어내다 말고 잔망스러운 윙크를 날리며 아이돌 자아를 뽐낸다. 여기에 우아한 며느리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거친 입담과 걸크러시 본능을 분출하는 박지현의 반전 매력은 스크린을 쥐락펴락한다. 누가 이들을 협박해서 캐스팅한 게 아니라면 이토록 무자비하게 망가질 수는 없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의 앙상블만으로도 숨이 찬데 화룡점정을 찍는 건 오정세다. 39주 연속 2위라는 웃픈 타이틀을 훈장처럼 달고 살던 '원조 고막남친' 최성곤 역의 오정세는 그 자체로 '와일드 씽'의 치명적인 킥이다.
새하얀 셔츠를 입고 미소를 흩뿌리며 "니가 좋아~"를 부르던 꽃미남 발라더는 20년 뒤 속세의 한을 품고 산짐승을 잡는 거친 유해조수 사냥꾼이 되어 나타난다. 스크린에 그가 무표정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객석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폭소가 터져 나온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구역질을 참아가며 기어코 노래를 완창해 내는 마지막 무대 장면은 그야말로 오정세 코미디의 결정타다. 처절한데 배꼽 빠지게 웃기고, 웃기면서도 묘하게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왕년의 스타가 재기하는 뻔한 눈물 짜내기 서사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 '해치지않아'를 통해 엇박자 코미디의 장인으로 불리는 손재곤 감독과, 코미디 흥행 불패 신화 '극한직업' 제작진의 만남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 쉴 새 없이 터지는 변수 속에서 억지 감동 대신 산뜻하고 세련된 유머를 꽉꽉 채워 넣었다.
영화를 뚫고 나오는 사운드트랙은 단연코 올여름 극장가와 가요계를 동시에 사로잡을 가장 큰 무기다. JYP 군단이 참여한 OST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의 고막을 괴롭힐(?) 것이다. 상큼함 한도 초과의 트라이앵글 데뷔곡 'Love is'(러브 이스), 세기말 반항기를 담은 'Shout it out'(샷 잇 아웃), 그리고 왠지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최성곤의 애달픈 고백송 '니가 좋아'까지. 영화 티켓을 샀는데 K팝 콘서트 VVIP석에 앉은 듯한 짜릿함이다.
단언컨대 극장 문을 나설 때쯤 입술은 이미 "사랑은 왜 이리 왜 이리 어려운 건지~"와 "니가 좋아~"를 흥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팍팍한 일상에 완벽한 도파민을 선사할 와일드한 놈들의 처절한 고군분투기. 올여름 웃음 차트는 '와일드 씽'이 완벽하게 싹쓰리할 준비를 마쳤다.
러닝타임 107분, 12세 이상 관람가. 6월 3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