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에서 주연이 메인 요리라면 특별 출연은 애피타이저나 장식용 고명에 가깝다. 보통은 가볍게 입맛을 돋우고 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고명이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감칠맛이 넘쳐서 메인 요리의 자리마저 넘본다면 어떨까. 티빙 시리즈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 등장하는 이상이의 활약이 딱 그렇다. 제작발표회에서 "특별히 많이 출연해서 특별 출연입니다"라던 그의 유쾌한 농담은 곧 이 작품 속 그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명제가 됐다.
이상이가 연기하는 4중대장 황석호 대위는 묘한 모순으로 빚어진 인물이다. 자기애로 똘똘 뭉쳐 겉으로는 바늘 하나 안 들어갈 듯 꼿꼿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속은 한없이 유하고 투명하다. 원하는 바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뽐내지만, 그 과정과 속내가 시청자에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탓에 오히려 눈치코치 없는 곰 같은 모습으로 군 생활을 좌충우돌한다. 과거 프로젝트 그룹 MSG워너비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던 그는, 이번 B급 코미디 드라마에서도 서사에 착 감기는 '인간 MSG'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투명한 불도저가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우는 지점은 다름 아닌 미각이다. 흔하디흔한 믹스커피 대신 군대에서 굳이 드리퍼를 꺼내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깐깐함. 취사병들의 등줄기에 진땀을 빼게 만드는 그의 혀끝은 3스타 미슐랭 셰프조차 쉽게 예측하지 못할 절대적인 기준을 가졌다. 이상이는 이 까탈스러운 미각의 소유자를 밉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이상이의 '특별한' 진가가 크게 드러난 건 SNS에서 화제를 모은 6회 '미각보이즈' 장면이다. 강성재(박지훈)가 만든 아란치니 주먹밥을 한입 베어 문 순간, 군복을 입고 있던 황석호는 단숨에 깔끔하고 세련된 블랙 수트 차림으로 전환되며 환상 속 무대 한가운데로 소환된다.
바삭한 튀김옷과 농밀한 밥알이 혀끝에 닿으며 밀려든 놀람은 이내 환희로, 궁극의 행복으로 번져간다. 이상이는 이 복합적인 미각의 황홀경을 진지해서 더 배꼽을 잡게 만드는 풍부한 발성의 독백과 유려한 안무로 승화시킨다. 각이 살아 있으면서도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는 스텝, 박자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현란한 손동작, 그리고 뒤에 자리한 미각보이즈의 센터로서 춤을 추는 내내 무섭도록 유지되는 뻔뻔한 표정 연기는 시청자를 압도한다.
이 대목에서 극의 카타르시스를 완성하는 것은 코믹한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미친 퀄리티다. 이상이는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레드북' 등 무대에서 피땀 흘려 갈고닦은 실력을 주먹밥 한 입의 황홀경을 표현하는 데 남김없이 쏟아부으며 찬란한 재능 낭비를 완성했다. 쓸데없이 고퀄리티를 자랑하는 퍼포먼스와 이상이의 능청스러운 몰입은 도무지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제작발표회에서 "첫 촬영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함께하고 제작발표회까지 오게 됐다"며 웃어 보였던 그의 장기 특별 출연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특유의 뻔뻔하고도 능청스러운 연기가 황석호라는 기상천외한 캐릭터, 그리고 코믹한 연출과 완벽하게 맞물리며 작품에서 절대 도려낼 수 없는 대체 불가한 재미를 불어넣었다.
코미디야말로 배우 본연의 매력과 감각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장르다.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마저 자신만의 쫀득한 리듬으로 시청자를 설득해 내는 이상이의 연기는 그가 왜 '특별한 배우'인지를 보여준다. 감독이 애초에 그를 특별 출연으로 섭외해 놓고 왜 첫 촬영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차마 놓아주지 못하고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는지 그 이유가 장면 곳곳마다 선명하다.
단발성 깜짝 등장이라는 특별 출연의 뻔한 공식을 찢고 기어이 극의 중심부에 묵직하게 자리한 이상이. 극의 틈새마다 기분 좋은 타율로 웃음을 터뜨리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얼굴로 대중의 혼을 쏙 빼놓을지, 벌써부터 그의 다음 행보가 허기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