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게 변화는 필요하고 실험은 숭고하다. 그러나 변화와 방황 사이의 경계는 때때로 흐릿하다. 방황이 나쁜 것은 아니다. 길을 잃어봐야 제 길을 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질 때 다시 본질로 안내하는 확고한 나침반은 다름 아닌 음악 그 자체다. 라이즈(RIIZE)는 7개월 만의 컴백으로 전성기의 감각을 알리는 사이렌을 힘껏 울렸다. 바로 미니 2집 'II'(투)로다.
라이즈를 처음부터 따라온 이라면 이 팀의 가장 또렷한 정체성이 어디서 왔는지 금세 떠올릴 것이다. 이른바 '악기 시리즈'다. 데뷔곡 'Get A Guitar'(겟 어 기타)에서 기타의 펑키한 리프로 시작한 계보는 'Talk Saxy'(토크 색시)의 중독적인 색소폰으로 이어졌고, 미니 1집 'RIIZING'(라이징)의 'Boom Boom Bass'(붐 붐 베이스)에서 베이스를 전면에 세우며 정점을 찍었다.
라이즈는 특정 악기의 음색이 곡의 정서와 사운드 전체를 이끄는 구심점으로 기능하게 했고, 이는 곧 라이즈의 독자적인 색이 됐다. 맑고 도발적이면서도 절도 있는 에너지, 귀에 달라붙는 훅의 중독성, 이를 몸으로 구현하는 퍼포먼스의 삼각 구도 역시 단단하게 맞물렸다. 정규 1집 'ODYSSEY'(오디세이)의 타이틀곡 'Fly Up'(플라이 업)까지는 이러한 흐름이 이어졌다. 1950년대 로큰롤 리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댄서블한 구성안에서도 라이즈 특유의 맑고 자유로운 에너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발매한 싱글 'Fame'(페임)은 전혀 다른 선택지를 열었다. 레이지 힙합의 거친 공격성, 찢기는 기타의 압력, 잔뜩 응축된 감정의 질감이 이전의 라이즈를 낯선 방향으로 밀어냈다. 이 사운드적 전복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였고, 라이즈가 고이기를 거부하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다만 변화에는 때때로 낯섦이라는 이름의 반감이 뒤따른다. 대중과 팬덤이 라이즈에게 기대한 음악과 'Fame' 사이의 온도 차는 상당했고, 그 간극이 생경함으로 읽히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리고 16일 발매한 'II'를 통해 라이즈는 다시 자신들이 가장 잘 달릴 수 있는 궤도에 올라섰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한 것은 아니다. 익숙한 장점을 되찾는 동시에 낯선 실험을 거치며 획득한 거친 질감과 반항성을 함께 끌어안았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우회로에서 얻은 감각까지 가지고 제 길을 다시 찾은 셈이다.
타이틀곡 'Do your dance'(두 유어 댄스)는 첫 음이 울리는 순간부터 라이즈가 어디로 돌아왔는지를 선명하게 알린다. 곡을 여는 리드미컬한 신스와 짧고 정확하게 끊어지는 전자음의 스타카토는 금속 표면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다시 움직여'라고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Fame'의 음침하고 중력감 있는 도입부와는 다른 첫인상이다.
곡 전체를 아래에서 끌어안는 강렬한 디스토션 808 베이스 특유의 저음역을 왜곡 처리해 공격성을 더한 이 로우엔드는 묵직하되 억압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위에서 펼쳐지는 후렴구의 무심하고 유연한 흐름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원빈이 "지금까지 라이즈 퍼포먼스 중에서 이렇게 힘을 뺀 코러스 안무는 처음"이라고 짚은 것처럼 무거운 베이스와 여유로운 후렴의 역설이 이 곡의 핵심이다. 숨 막힐 만큼 두꺼운 저음 위에서 오히려 호흡을 고르는, 에너지를 모두 쏟는 대신 필요한 순간에 힘을 감추는 것이 데뷔 4년 차 라이즈가 보여주는 성숙이다.
특히 'Get A Guitar', 'Talk Saxy', 'Boom Boom Bass'로 이어진 악기 시리즈가 소리를 내는 도구를 매개로 라이즈의 정서를 조각해 왔다면, 'Do your dance'는 그 계보를 신체 자체로 확장한다. "Head, hips, shoulders, toes"(머리, 엉덩이, 어깨, 발가락). 이 후킹한 네 음절은 인간의 몸을 리듬의 기본 단위로 치환한다. 악기 시리즈가 도구에서 감정을 발화했다면 'Do your dance'에선 몸으로 음악을 만든다. 기타를 치고, 색소폰을 불고, 베이스를 튕기던 팀이 마침내 몸 자체를 악기로 삼은 것이다. 기타를 치다 색소폰을 불다 베이스를 튕기다 마침내 몸 자체를 악기로 삼은 영리한 귀결이다.
'Do your dance'가 라이즈의 선명한 얼굴을 되찾아줬다면, 나머지 다섯 트랙은 그 얼굴 뒤에 쌓인 새로운 깊이를 드러낸다.
오프닝 트랙 'SOAR'(소어)는 직선적인 드럼 비트와 거친 기타, 강한 신스가 맞물리는 얼터너티브 록으로 앨범의 첫 문을 연다. 베이스와 드럼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직진의 추진력을 만들고, 날것에 가까운 기타의 마찰감은 곡의 표면을 거칠게 긁는다. 이는 'ODYSSEY'가 시네마틱한 스케일로 청춘의 여정을 그렸던 방식과 다르다. 'SOAR'는 여정을 서사로 설명하는 대신 속도와 압력으로 압축한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더 높이 날아오르겠다는 패기가 시원하게 뻗는 보컬 위에 얹힐 때, 첫 월드 투어 'RIIZING LOUD'(라이징 라우드)를 완주하고 돌아온 팀이라는 사실이 소리 안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밖에도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베이스 하우스 곡 'D-D-Done'(디-디-던), 질주하는 고조감을 R&B 힙합으로 풀어낸 'Overdrive'(오버드라이브), 펑키한 댄스곡 'Like a Bomb'(라이크 어 밤)까지 메탈릭하면서도 유려하게 정제된 사운드가 깔려 있다. 앨범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팝 앤섬 장르의 'In a Loop'(인 어 루프)는 다른 트랙에 비해 한결 맑고 희망적인 무드로 앞선 트랙들의 묵직함을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앨범의 끝맛을 산뜻하게 장식한다.
'II'는 라이즈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경로를 소화한 위에 서 있다. 악기 시리즈의 직관적 에너지, 'ODYSSEY'의 서사적 스케일, 그리고 'Fame'에서 시험한 음악적 반항성. 이 모든 것이 'II'에서 재조합된다. 타이틀 'Do your dance'가 맑고 도발적인 에너지를 다시 꽉 쥐고, 오프닝 'SOAR'의 메탈릭한 질감이 반항의 감각을 다듬으며, 6트랙의 수록곡이 장르/감정의 스펙트럼을 풍성하게 가로지른다. 은석이 'II'를 "다채로운 색깔의 크레파스"라고 정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성찬이 첫 월드 투어 이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성장과 변화를 느꼈다"고 했고, 앤톤이 "멤버들이 데뷔 초보다 자기 생각을 편하게 말하게 됐다"고 짚어낸 것처럼 'II'에는 팀이 쌓아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다. 공연으로 단련한 보컬, 무대 위에서 체득한 자신감 등이 모두 소리에 반영됐다. 이 축적 끝에 라이즈는 자신다운 방식으로 다시 비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