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네 남자가 세계 각국의 테마파크를 찾아 떠나는 본격 덕후 여행 프로젝트가 막을 올렸다. 설명만 들었을 땐 익숙한 여행 예능처럼 보였다. 하지만 방송인 노홍철과 셰프 최강록, 배우 고경표,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라는 예상 밖의 조합을 듣는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이들을 하나로 묶은 건 단 하나, 놀이공원에 대한 진심이다. 이 단순한 공통분모야말로 MBC 예능 ‘놀러코스터’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키워드다.
여행 예능의 공식은 익숙하다. 출연자들이 낯선 나라를 찾아 관광지를 둘러보고, 현지 음식을 맛보고,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에게 감동 받으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다채널 시대가 된 지금, 정규 방송이 아니어도 여행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잘 다듬어진 방송보다 유튜버의 날 것 같은 브이로그가 더 친숙한 시대다. 더 이상 어디를 다녀왔다는 기록만으로는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란 어렵다.
그래서 ‘놀러코스터’는 과감하게 시선을 바꿨다. 관광지 수십 곳을 훑는 대신 놀이공원 한 곳을 깊게 파고든다. 첫 여행지로 선택한 스페인 타라고나의 포르트 아벤투라는 유럽에서 가장 높고 빠른 롤러코스터 ‘레드 포스’가 있는 곳이다. 멤버들은 놀이기구를 하나씩 체험하며 단순히 “탔다”는 인증이 아니라 “왜 특별한가”를 온몸으로 검증한다. 최고 시속 130㎞가 넘는 스릴을 온몸으로 견디고, 구토 직전까지 갔다가도 다시 줄을 서는 모습은 관광객의 여행이라기보다 한 분야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기록에 가깝다. 최근 여행 콘텐츠가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르포와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면, ‘놀러코스터’는 그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시청자는 이제 아름다운 풍경보다 ‘왜 재미있는지’를 설명해 줄 사람을 원한다.
흥미로운 점은 네 사람이 같은 공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긴다는 데에 있다. 빠니보틀은 테마파크의 역사와 어트랙션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내며 ‘빠미나이’라는 별명을 얻고, 고경표는 공간이 품은 이야기와 감성을 발견한다. 최강록은 음식에서 여행의 기억을 복원하고, 노홍철은 누구보다 순수한 리액션으로 놀이공원의 설렘을 온몸으로 즐긴다. 억지 역할 분담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길러온 시선과 반응들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평균 나이 41세인 네 남자가 놀이공원 안에서만은 어린아이처럼 변한다는 점이다.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인형을 끌어안고, 귀여운 모자를 쓰는 등 일상에서는 다소 쑥스러울 법한 모습이지만 놀이공원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롤러코스터를 탄 자신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에 폭소하고, 추억을 간직하자며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구매한다. 초코 츄러스 한 입에 물은 채 함박 웃음지으며 다음 탈 것을 물색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경쟁과 책임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 마음껏 들뜨고 웃을 수 있는 놀이공원이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프로그램은 놀이공원이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동심을 허락하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그 공간에서 네 사람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진다. 외향적인 노홍철과 고경표, 비교적 조용한 빠니보틀과 최강록은 함께 놀이기구를 타고, 기다리고, 웃고, 겁먹는 시간을 반복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특히 동생들과의 거리를 쉽게 좁히지 못하던 최강록은 체력이 모두 방전된 뒤에야 처음으로 반말을 건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허물어진 거리감은 이들의 관계가 진짜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놀이공원은 단순히 놀이기구를 타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까지 허무는 공간이 된 셈이다.
‘놀러코스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이유 없이 깊게 파고드는 사람들의 진심이 더는 마니아만의 취향으로 머물지 않는 시대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롤러코스터가, 누군가에게는 놀이공원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프로그램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권에 빼곡한 출입국 도장이 자랑이 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녀왔느냐보다 그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얼마나 깊은 추억을 남겼느냐, 얼마나 깊이 좋아하느냐가 콘텐츠의 경쟁력이 된다. 세계 모든 테마파크를 방문하고, 70세가 되는 해에 자신만의 놀이공원을 만들고 싶다는 노홍철의 다소 엉뚱한 꿈 역시 그래서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다. 그와 못지않게 놀이공원을 사랑하는 최강록과 고경표, 빠니보틀이 함께하기에 그 진심은 더욱 선명해진다. ‘놀러코스터’가 궁금한 이유는 다음 여행지가 어디인지보다, 그곳에서 이들이 또 어떤 진심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이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