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국제 콩쿠르 파이널 무대. 손가락에 피를 흘리면서도 처절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자. 같은 시간, 같은 콩쿠르 무대에 설 예정이던 마지막 연주자는 공연장으로 향하던 중 괴한에게 납치돼 쫓기다 총에 맞아 강으로 떨어진다. 드라마 ‘포핸즈’는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던 두 주인공이 극단적으로 다른 상황을 맞는 순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음악 천재들만 모인 예술고등학교에서 만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경쟁과 성장을 그리는 tvN 토일드라마 ‘포핸즈’(극본 신이원, 연출 박현석)는 제목부터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한다. ‘포핸즈’란 한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의 연주자가 나란히 앉아 네 개의 손으로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연주법이다. 혼자라면 건반 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갈 수 있지만, 두 사람이 한 피아노를 공유하는 순간부터는 달라진다. 언제 물러나고 언제 나아갈지, 상대의 연주를 얼마나 믿을지 매 순간 호흡을 맞춰야 한다.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음악을 함께 만들어내는 연주법인 셈이다.
극 중 강비오(송강)와 최정요(이준영)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비오는 세계적인 지휘자 강승운(정진영)의 외손자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온 완성형 피아니스트다. 기교는 흠잡을 데 없고 수상 경력도 화려하지만, 어머니 강지혜(윤세아)의 기대와 할아버지의 냉대 속에서 연주해온 탓에 정작 자기 음악은 갖지 못했다. 피아노와 한 몸처럼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연주를 즐겨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는 인물이다. 반면 최정요는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사채업자의 일을 도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배운 게 전부지만 정제되지 않은 대신 자유롭고 강렬한 연주를 한다. 비오에게 정요는 자신에게 없는 감각과 자유를 지닌 존재이고, 정요에게 비오는 자신이 누려보지 못한 교육과 무대의 상징이다. 때문에 이들의 대결은 단순한 천재 대 노력파의 익숙한 구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는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때로는 그 결핍을 채워주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어린 시절 콩쿠르 객석에서 어머니를 잃은 이후 무대 공포증에 시달려온 정요가 그 사실을 숨기려 하자, 비오는 정요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연습실을 촛불로 채우고 특별한 무대를 마련해 경험을 쌓게 한다. 정작 중요한 무대에서 도망가려는 정요의 눈을 가린 채 비오는 “너는 내 소리만 들어”라는 말로 그를 다시 무대에 세운다. 지하철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 잠드는 장면까지 더해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밀착감을 만들어낸다. 화면에 담기는 감정 역시 질투와 동경, 경쟁과 의존이 뒤섞인 복합적인 관계에 가깝다.
평온해지는 줄 알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강승운이 두 사람의 재능을 대놓고 비교하며 경쟁심에 불을 지피면서 훈훈했던 우정에 균열이 생긴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자유곡으로 승부하는 국제 콩쿠르 무대에 나란히 선다. 그러나 이 라이벌 구도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은 경쟁심보다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할아버지에게 인정받겠다는 목표 하나로 콩쿠르를 준비해온 비오가 악보를 잃어버리고 자신감마저 무너져 기권을 선언하자 정요는 자신이 해석한 악보를 그의 방문 틈으로 밀어 넣는다. 이기고 싶은 상대에게 자신의 무기를 건네는 장면은 ‘포핸즈’가 그리는 라이벌리의 본질을 압축한다. 밀어내고 싶으면서도 닮고 싶고, 이기고 싶으면서도 상대의 음악을 완성해주고 싶은 마음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핸즈’는 두 사람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려는 순간 다시 한 번 방향을 튼다. 국제 콩쿠르 결선 무대를 앞두고 정요가 납치돼 실종되고, 비오는 자신의 최고의 무대를 완성해 박수를 받는다. 9년이 흐른 뒤,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된 비오는 여전히 정요를 잊지 못하고 그의 환상을 본다. 수사 기관은 정요가 죽었다고 결론 내렸지만, 비오는 정요의 행방을 찾아 헤맸고, 우연히 체코에서 열린 지휘 콩쿠르를 찾았다가 무대에 선 한 사람을 발견하는데, 예상대로 정요다. 피아니스트였던 정요가 지휘자로 콩쿠르 무대에 올랐다.
나란히 앉아 한 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던 두 사람이 지휘자와 연주자로 마주했다는 것만으로도 뒷 이야기는 충분히 궁금해진다. 포핸즈를 연주해던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건반을 나눠 짚지도 않고, 하나의 악기를 두고 라이벌로 겨루지도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이끌고 다른 한 사람이 그의 손짓에 따라 연주한다. 역할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서로의 음악에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라는 점에서 ‘포핸즈’로 시작한 이야기가 형태를 바꾼 ‘포핸즈’로 계속되는 셈이다.
1회 3.4%로 출발한 ‘포핸즈’는 6회 7.3%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특히 두 사람이 9년 만에 다시 마주한 6회는 이야기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 상승세의 중심에 있는 것도 결국 두 천재의 관계다. 누가 더 뛰어난 피아니스트인가, 누가 얼마나 대단한 천재인가보다 궁금한 것은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음악을, 그리고 서로를 끝내 인정할 수 있을지다. ‘포핸즈’는 승부의 결과보다 그 승부를 통해 두 사람이 어떤 관계가 되어가는지를 좇게 만드는 이야기다.
조이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