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의 시행사는 '조합'이다. 때문에 이주비, 조합 운영자금 등 자금은 조합이 직접 조달해야 한다. 시공사가 선정된 이후에는 시공사가 자체 자금을 대여해주거나 보증을 서서 자금을 조달한다. 그러다 보니 시공사가 자금 대여 중단을 무기로 조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시공사도 불만을 토로한다. 조합이 일반분양을 늦추면 사업비와 공사비 회수가 무기한 늦어지고, 입지가 좋은 사업지는 조합의 변심으로 시공사 교체도 잦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법적 소송을 벌이지만 시공사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날을 세울 때 조합원들이 크게 걱정했던 부분 중 하나는 사업비 7000억원 회수였다. 돈을 빌려준 대주단은 대출 만기 연장 거부를 통보했다. 보증을 선 시공단은 대주단에 7000억원을 대위변제한 뒤 공사비와 사업비, 이자를 포함한 비용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최악의 경우 시공단이 현 사업장을 경매로 넘기고 자금을 회수하는 가능성까지 거론돼 조합원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때문에 시공단이 사업비 대여를 무기로 조합을 협박하고 유리한 위치에서 목소리를 높인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공단은 2021년 10월에도 조합에 조합 운영 경비와 이주비 대여를 중지하겠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공단은 조합원 동호수 추첨 등 조합이 의무를 다하지 않고 조합과 시공 계약을 맺은 이후 한 번도 대여금과 공사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계약에 따른 정당한 대응이라고 반박했다.
민간 정비사업에서 시공사를 통하지 않고 자금 조달은 사실상 어렵다. 시공사는 자체 유보금을 빌려주거나 본인들의 신용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사업비·이주비·부담금 대출은 도시주택보증공사(HUG)의 보증을 이용하는데 이때도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약속한다.
시공사가 돈줄은 쥐고 있지만 늘 갑의 위치는 아니다. 이주 전이거나 착공 전에 있는 서울 주요 입지 조합은 갑을 관계가 바뀐다.
신반포15차아파트 주택재건축 조합의 시공사 교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우건설은 2017년 신반포15차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되고 도급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후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비 증액 이슈가 생기면서 조합과 시공사는 갈등을 빚었다. 결국 조합은 2019년 12월 대우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그다음 해 4월 삼성물산을 새로운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후 대우건설은 조합을 상대로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10월 2심에서 법원이 대우건설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은 조합이 낸 상고를 기각해 조합의 시공사 계약 해지가 부당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이 조합을 상대로 낸 '공사 중지 가처분'은 조합원의 피해 등을 우려해 기각했다.
대우건설은 대법원판결을 통해 최종적으로 시공사 자격은 인정받았지만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삼성물산이 계속해서 공사를 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사업비 투입비용 회수와 손해배상청구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조정은 불가피한데 조합이 무조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서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특히 중견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한 조합은 대형사를 시공사를 선정하고 싶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경우가 잦다"고 토로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착공 전에는 시공사 교체가 용이하기 때문에 강남 등 서울 주요 입지 조합은 유리한 위치에서 목소리를 낸다"면서 "사업성이 좋은 강남권이거나 착공 전후인지에 따라 조합과 시공사와의 관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