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다주택자 압박의 불똥은 임대차 시장으로 향했다. 매매 매물은 쌓이고 전세 매물은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올해 서울 전셋값 누적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배 수준으로 뛰었다. 입주 물량 감소와 전세 공급 축소, 매수 대기수요 유입까지 겹치며 전셋값 상승세가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7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월31일 기준 2만1785건이던 서울 전세 매물은 4월6일 현재 1만5195건으로 6590건(30.3%) 감소했다. 불과 두달 남짓한 기간 동안 전세 매물의 3분의1 가까이 사라진 셈이다.
서울 외곽 지역의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노원구는 587건에서 215건으로 줄어 63.4% 감소했고 중랑구(-57.0%), 금천구(-49.3%), 강북구(-49.2%) 등도 절반 가까이 매물이 증발했다. 동작구(-46.8%), 마포구(-38.3%), 성동구(-33.4%) 등 수요 밀집지역에서도 매물 감소가 뚜렷했다.
감소량 기준으로 보면 강남권의 임대 매물 공급 부족이 더 눈에 띈다. 송파구는 3864건에서 2231건으로 줄어 1633건 감소했고 강남구(-1570건), 서초구(-612건) 등도 매물이 대폭 줄었다. 감소율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기존 매물 규모가 큰 만큼 절대 감소량이 커 시장 체감 공급 부족은 강남권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구조다.
전세 매물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2월 0.08%에서 3월 말 0.15%까지 확대됐다. 누적 상승률 역시 올해 1.61%로 전년 같은 기간(0.32%) 대비 약 5배 확대됐다.
특히 최근에는 전세 상승률이 매매를 앞지르는 흐름이 나타난다. 같은 기간 서울 매매가격 상승률은 0.12% 수준에 머물렀다. 과거 매매가 전세를 선행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전세가 시장을 주도하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는 1월만 해도 7억4000만~7억6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전세 매물의 호가는 8억5000만원 선이다. 두달만에 최대 1억원 가까이 상승했다. 게다가 3885가구 대단지임에도 전용 59㎡ 전세 매물이 단 1건에 불과하다. 노원구 중계동 '중계그린'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전용 59㎡ 전세는 2월 7억원에서 3월 6억9500만원에 거래됐지만 현재 호가는 7억~8억원까지 올라섰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정책 영향에 따른 임대 구조 변화를 지목한다. 다주택자 대출 규제와 만기 연장 제한으로 보유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집주인들이 매물을 시장에 내놓거나 전세를 회수해 실거주 또는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월세 전환까지 겹치면서 전세 물량 감소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전세가 아닌 반전세·월세 비중이 늘어나면서 순수 전세 공급 자체가 구조적으로 축소되는 흐름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로 비거주 1주택자까지 매도에 나설 경우 1주택자 보유 임대 물건이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며 전세 매물 부족이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차 시장은 이미 전세 매물 자체가 부족한 상태"라며 "매물은 늘고 전세 매물은 줄어드는 구조 속에서 전셋값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실거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전세 매물 감소는 불가피하다"며 "이 같은 수급 불균형 속에서 당분간 전셋값 상승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서울 주택시장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도 당분간 박스권 흐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매물 출회가 상당 부분 마무리된 가운데 전세시장 불안과 수요 이동이 맞물리며 가격 하방을 지지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오는 5월9일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자체의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매도 의사가 있는 다주택자 상당수가 사전에 매물을 정리한 만큼 추가적인 매물 출회 여력은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일부 급매물이 나올 수는 있지만 시장 방향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에 따라 서울 주택시장은 한동안 박스권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됐다. 7월로 예정된 세제 개편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강도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방향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매도자는 가격 조정에 소극적인 반면 매수자는 관망세를 유지하면서 거래 역시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장은 가격대별로 차별화 흐름이 뚜렷하다. 강남3구 등 고가 주택은 정책 영향으로 조정 압력이 강한 반면 15억원 이하 중저가 시장은 전세 매물 부족과 실수요 유입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격대별 수요 이동에 따른 '키맞추기' 현상이 확산하며 외곽과 비강남권에서는 상승 흐름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임대차 시장 불안은 매매시장 하방을 지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전세 매물 감소와 월세 전환, 입주 물량 부족이 겹치면서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가운데 매수 대기수요가 전세시장에 머물거나 일부는 매수로 전환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 조정폭을 제한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다만 향후 시장 흐름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중저가 시장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고가 주택 조정이 장기화할 경우 중저가 시장도 보합 또는 정체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동시에 제기된다. 정책 강도에 따라 추가 매물 출회 가능성도 변수로 지목된다.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르게 될 핵심 변수는 7월 세제 개편안이다. 보유세 실효세율 인상이나 양도세 체계 개편, 고가 1주택 과세 강화 여부 등에 따라 고가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매물 흐름과 가격 방향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비거주 1주택 규제 등 추가적인 정책 변화도 시장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시 변수도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가 압력이 확대될 경우 금리 부담이 커지며 매수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어서다. 동시에 분양가 상승을 자극해 청약 대기수요를 기존 주택시장으로 이동시키는 등 복합적인 영향도 예상된다. 착공 감소에 따른 향후 입주 물량 감소 역시 중장기적으로 가격 하방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서울 주택시장은 단기적으로 정책과 거시 변수 영향 속에서 박스권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며 "중저가 실수요 시장은 견조한 반면 임대차 시장은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이중 구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방향을 가를 분수령은 7월 세제 개편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