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넣으면 뭐하나, 15억 없는데"…올해 13만명 청약통장 해지

남미래 기자
2026.05.14 16:31
청약통장 가입자 수 현황/그래픽=윤선정

#역대 서울 민간분양 단지 중 최고 평균 경쟁률을 기록한 '아크로 드 서초' 청약 경쟁은 '가점 고점자'와 '현금 부자'만의 잔치였다. 올해 처음으로 만점 청약통장이 등장했고 최저 청약가점은 69점에 달했다. 69점은 4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점이다. 어렵사리 가점 경쟁 문턱을 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아크로 서초 전용 59㎡ 분양가는 18억6000만원 수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덕분에 주변 시세보다 약 20억원 낮은 수준에 분양가가 정해졌지만 이 가격으로도 당첨자가 마련해야 할 최소 자금은 14억6000만원에 이른다. 거래가액이 15억원을 넘는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4억원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올 들어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13만명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을 중심으로 청약 당첨 커트라인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출 규제로 인해 일반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 부담마저 확대되면서 아예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14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저축·청약부금·청약예금) 가입자 수는 2605만1929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기준 2618만4107명에서 13만2178명이 줄어든 수준이다.

청약통장 이탈자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의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지난해 12월 639만7800명에서 올해 3월 635만9013명으로 3만8787명 줄었다. 같은 기간 인천·경기는 868만5251명에서 863만3226명으로 5만2025명 감소했다. 수도권에서만 9만812명이 청약통장을 해지한 셈이다. 이는 전체 감소분의 약 69% 수준이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020년 분양가상한제 도입 이후 급증해 2022년 6월 2859만927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이후 이탈이 시작돼 현재는 정점 대비 250만명 넘게 줄었다.

청약통장 해지가 늘어난 주된 원인으로는 높은 당첨 커트라인이 꼽힌다.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서울 잠원동 '오티에르 반포'는 당첨자의 최저·최고 가점은 각각 4인 가구와 6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점 수준이었다. 12개 주택형의 당첨 최고 가점은 모두 70점 이상이었고 최저점은 69점이었다.

당첨 가점이 84점인 이른바 만점 통장도 등장했다. 이는 7인 이상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 기간을 유지하고 청약통장 가입 기간도 15년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앞서 청약이 진행된 더샵 신길센트럴시티, 더샵 프리엘라 등도 당첨 가점이 60점대 후반~70점대를 기록했다.

고분양가와 대출 규제도 청약통장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오티에르 반포의 분양가는 25억150만~27억5650만원 수준이다. 거래가액이 25억원을 넘으면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2억원으로 제한되는 만큼 23억~25억원가량의 현금을 들고 있어야만 실제 입주가 가능하다.

비강남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달 분양 예정인 노량진 '아크로 리버스카이'의 전용 84㎡ 분양가는 최고 27억9580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달 분양한 노량진뉴타운 첫 분양 단지 '라클라쎄 자이르네'의 최고 분양가 25억8510만원보다 2억원 넘게 오른 수준이다. 최소 20억원 이상의 현금 부자만 접근 가능한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 등 가구 구조 변화를 반영해 청약 제도를 손질하고 분양가상한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1인 가구가 지난 10년간 500만 가구에서 800만 가구로 늘었지만 이들은 부양가족 항목에서 높은 청약 가점을 받기 어렵다"며 "가입 기간이 15년을 넘은 장기 가입자에게 추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보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지역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이른바 로또 청약 수요가 특정 단지에 몰리고 있다"며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하거나 폐지하는 방식으로 청약 수요를 분산시켜 커트라인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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