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3구 밖에서도 '국민평형 30억원 시대'가 현실화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재개발 단지들의 분양가가 단기간에 급등한 영향이다. 공사비 인상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 단지인데도 분상제 적용 여부에 따라 건축비 비중이 수배씩 벌어지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현행 분양가 검증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입주자모집공고가 공개된 서울 동작구 흑석11구역 재개발 단지 '써밋 더힐'의 전용 84㎡ 최고 분양가는 29억7820만원으로 책정됐다. 서울 비강남권 재개발 단지에서도 국민평형 분양가가 사실상 30억원에 육박하면서 평당 1억원 시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분위기다.
서울 재개발 단지의 국민평형 분양가는 최근 한달 새 가파르게 뛰고 있다. 지난 4월 분양한 동작구 노량진동 '라클라체자이드파인' 전용 84㎡ 최고 분양가는 25억8510만원이었다. 이어 이달 분양하는 동작구 대방동 '아크로 리버스카이'는 27억9580만원으로 책정됐다. 여기에 청약 일정이 겹치는 '써밋 더힐'까지 30억원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나오면서 서울 비강남권 재개발 단지 분양가가 단기간에 25억원대에서 30억원선까지 치솟았다.
업계에서는 최근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비분상제 단지에서는 특화 설계와 커뮤니티 비용뿐 아니라 조합 수익 등이 건축비 항목에 폭넓게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목표 분양가를 먼저 정한 뒤 대지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건축비로 맞추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앞선 단지가 고분양가 논란에도 청약 흥행에 성공할 경우 이후 공급 단지들이 이를 새로운 기준점처럼 삼아 분양가를 더 높이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구조가 가능한 것은 비분상제 단지의 분양가 규제 장치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단지는 택지비와 기본형건축비를 기준으로 가격이 제한되지만 비분상제 단지는 가격 자율성이 크다. 과거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를 통해 일정 부분 통제가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분양가 통제 기능이 사실상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동작구 측은 "민간 재개발 사업이어서 지자체가 분양가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HUG 역시 "분양가 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고분양가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분양가를 적극적으로 검증·관리하는 주체는 사실상 사라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분양가 구조 차이도 뚜렷했다. 올해 3월 분양한 서초구 '아크로 드 서초' 전용 59㎡ 최고 분양가는 18억2096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공급금액 기준 대지비는 15억2778만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건축비는 2억9317만원으로 전체 분양가의 16.1% 수준이었다. 반면 비분상제 단지인 '라클라체자이드파인' 전용 59㎡는 대지비 9억7072만원, 건축비 11억7937만원으로 건축비 비중이 54.9%에 달했다.
같은 DL이앤씨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아크로' 단지끼리도 차이가 컸다. 분상제 적용 단지인 '아크로 드 서초' 전용 59㎡ 건축비는 2억9317만원이었지만 비분상제 단지인 '아크로 리버스카이'는 6억4088만원으로 약 2.2배 차이가 났다.
신보연 세종대학교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대지비는 감정평가 기준이 있어 변동폭이 제한적이지만 비분상제 지역은 분양가를 먼저 정한 뒤 나머지를 건축비로 채우는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며 "과거에는 비분상제 지역도 HUG의 고분양가 심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깝다"고 말했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서울 청약시장의 진입장벽이 사실상 또 한번 높아졌다는 반응도 이어진다. 강남3구를 넘어 비강남권 재개발 단지까지 국민평형 분양가가 30억원에 육박하면서 "이제 서울 핵심지 청약은 현금 자산가들의 시장이 됐다"는 허탈감을 호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근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수억원대 성과급 사례가 잇따라 알려진 데 이어 서울 신축 분양가까지 치솟으면서 같은 서울 안에서도 자산 격차에 따른 체감 양극화가 더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민간 아파트 특성상 단순 비교만으로 고분양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경·커뮤니티·마감재 수준이 단지마다 달라 공사비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 어렵고 세부 내역도 표준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하면 또 다른 가격 규제가 될 수 있다"며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분상제를 강화하면 로또 청약과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상제로 가격을 억누르면 시세 차익은 당첨자에게 집중된다"며 "분상제 가격과 시세 간 차익을 공공과 민간이 나누는 방식 등 현실적인 대안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