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미콘 운송기사 파업 여파로 수도권 주요 건설현장이 일제히 공정 차질에 직면했다. 콘크리트 타설이 필수 공정인 골조 단계 사업장을 중심으로 작업이 중단되면서 공기 지연 우려가 빠르게 확산하는 양상이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대부분 건설현장에서 레미콘 공급이 사실상 중단됐다. 레미콘은 생산 당일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특성상 운송이 멈추는 즉시 콘크리트 타설 등 핵심 공정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주요 현장에서는 관련 공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건설사는 대체 공정으로 전환하며 긴급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콘크리트는 보관이 불가능해 당일 타설이 원칙"이라며 "운송이 차질을 빚는 순간 현장은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골조 단계에 진입한 사업장의 타격이 직접적이다. 골조 공정은 전체 공정의 약 15~20% 이후부터 시작되는 핵심 단계다. 콘크리트 타설이 중단되면 이후 내·외부 마감과 설비 공정까지 연쇄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실제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도 공정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날 수도권 현장 가운데 레미콘 타설 단계에 있는 사업장의 공정을 중단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레미콘을 쏟아붓는 골조 단계 현장은 즉시 공정을 멈췄다"며 "정상 운행하는 업체를 파악하고 있지만 수도권 레미콘 업체 상당수가 노조 소속이라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역시 수도권 지역 레미콘 타설 공정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현재 공정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사업장을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도 현장별 영향도를 점검하며 비상 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삼성물산 등 주요 건설사들도 비상 대응에 나섰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일부 현장은 대체 공정을 앞당겨 진행하거나 공정 순서를 조율하며 충격 완화에 나섰다. 다만 이는 임시 대응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통상 1~2주 내외, 길어도 한 달 이상 파업이 지속될 경우 공정 관리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초기에는 공정 순서를 조정해 버틸 수 있지만 장기화되면 공기 지연은 물론 사업비 증가, 품질 저하, 안전 리스크까지 복합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공기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한 공정 압축이 품질 및 안전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현장별 영향도는 상이하지만 반도체 공장 등 하이테크 현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이 대표적이다. 공정 속도가 빠르고 대규모 콘크리트 물량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만큼 레미콘 수요 의존도가 높아서다.
특히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산업시설은 일반 주택사업보다 공정 연계성이 높아 특정 공정이 지연되면 후속 설비 반입과 시운전 일정까지 연쇄적으로 밀릴 수 있다. 주택사업 역시 일부 단지는 공정 여유가 있지만 파업 장기화 시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중견·중소 건설사의 부담은 더욱 크다. 자금 여력과 공정 조정 능력이 제한적인 만큼 단기간에도 타격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는 일부 대응 여력이 있지만 중소 건설사는 버티기 자체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전운련)은 서울·경기·인천 지역 운송단가 인상과 통일 교섭체계 도입을 요구하며 이날부터 전면 휴업에 들어갔다. 이번 휴업에는 수도권 소속 조합원 약 8000명과 레미콘 운송장비 1만1000여 대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업에 참여한 레미콘 기사들은 개인 소유 차량을 운행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신분이지만 제조사들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여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건설사들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는 자재를 구매하는 입장일 뿐 운송기사의 고용 형태나 임단협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이번 사태는 '새우 싸움에 고래 등이 터진' 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