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행한 책임과 하지 않은 책임

권다희 기자
2017.04.17 04:42

“이 시점에 꼭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는데 이를 이행하는데 대해 책임을 묻는 게 맞습니까, 이행하지 않은데 대해 책임을 묻는 게 맞습니까. “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지난달 23일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위한 채무조정안에 참여할지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겪은 진통을 보며 이 말이 떠올랐다. 이런 저런 이유로 채무조정안 동참 결정을 미루는 국민연금의 모습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복지부동’ 내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로 해석돼서다.

투자한 채권이 부실화해 원금의 50%를 건지느냐, 아니면 10%를 건지느냐 2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내 돈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회수하는 방안을 택하는게 상식이다. 원금의 10%밖에 건지지 못해도 모든 우발채무를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는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이 낫다는 문제 제기도 가능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객관적인 제3자가 할 수 있는 얘기다. 손실 최소화를 택해야 할 투자자, 그것도 남의 돈을 맡은 위탁 운용자의 입장에서 주장하기는 부적절하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막판까지 여러 조건을 내걸며 이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손실을 더 많이 보는 P플랜을 택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설마 P플랜까지 가겠냐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향후 결정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에 대비하자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합리적인 선택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사례를 낳지나 않을까 지켜보는 입장에서 씁쓸했다.

오늘날 대우조선 사태도 따지고 보면 총대를 메지 않으려는 무사안일에서 비롯됐다. 대우조선은 2001년에 대우 계열사 중 워크아웃을 가장 먼저 졸업해 높은 기업가치를 유지했으나 매각되지 않았다. 매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던데다 매각했다 훗날 헐값매각의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들을 만든 책임은 당시의 합리적 판단을 미래 시점에서 결과론으로 재단해온 여론과 이 여론을 이해관계에 따라 부추기는 정치권에 있다.

권다희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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