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휴가를 기부합니다"…수출입銀, 한국판 마티법 도입

변휘 기자
2019.05.12 09:01

수은 노사, '휴가나눔제' 합의…'국내 첫 시행'에 공공기관·민간 '확산' 기대

'마티 법'을 남긴 프랑스 소년 마티./사진=호주 ABC뉴스 사이트 캡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 동료에게 자발적으로 휴가를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휴가나눔제, 일명 '마티법'이 수출입은행(수은)에 도입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유례없는 시도여서 수은의 나눔 문화 정착을 위한 마티법 도입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할지 관심이 쏠린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은 노사는 지난달 말 "일과 가정 균형, 직원 간 상생 문화 확산 위해 휴가나눔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에 합의하고, 휴가 관련 내부 규정 개정을 완료해 시행에 돌입했다.

휴가나눔제는 직원이 질병·장애·사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직장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휴가를 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부 대상은 중증 환자인 직원이며, 기부하는 직원은 물론 기부를 받는 직원도 회사에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휴가를 기부받은 직원은 직장을 나가지 못하는 기간에도 정상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현재도 근로기준법상 육아휴직 또는 가족 돌봄 휴직제 등이 존재하지만, 정상적으로 근무할 때보다 휴직 기간의 소득이 낮아지고 회사가 급여를 지급해야 할 의무 기간도 제한돼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장기간의 휴직·휴가가 필요한 근로자에게는 한계가 뚜렷한 셈이다.

다만 수은 노사는 직원 개인마다 부여되는 '연차 휴가'가 아닌 '보상 휴가'만 기부 대상으로 정했다. 보상 휴가란 야근 등 시간 외 근무 시 주어지는 대체 휴가 개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보상 휴가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휴가나눔제 취지에 부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연차 휴가는 법·제도적 한계와 근로자의 '쉴 권리'를 보장하는 흐름을 반영해 기부 대상에서 제외했다.

휴가나눔제는 프랑스에서 출발했다. 2011년 당시 암 투병 중이었던 9살 소년 마티의 아버지 제르맹과 가족들은 마티를 간호하기 위해 부여된 휴가를 모두 사용했지만, 병세는 더 악화됐다. 제르맹은 아들의 간호를 위해 퇴사를 고민했지만, 회사를 그만두면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걱정이었다.

이에 회사 동료들은 '제르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며 총 170일의 유급휴가를 모아줬고, 회사도 이례적인 요청이었지만 추가적인 경영 부담이 없고 직원들의 나눔에 대한 취지를 감안해 수용했다. 끝내 마티는 세상을 떠났지만 제르맹은 마지막까지 마티의 곁에 머물 수 있었고, 2015년 5월 프랑스 의회는 휴가 기부를 법제화했다.

국내에서도 2015년 12월 '한국판 마티법'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여론의 반향을 일으켰지만, 선진국에 비해 자유로운 연차 사용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국내 현실에선 기업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반론과 함께 19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의안이 폐기됐다.

수은의 휴가나눔제 도입은 반향이 상당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회의 법제화 노력이 무산되면서 첫발을 떼지 못한 제도가 공공 영역에서 구현되는 만큼, 다른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으로도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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