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는 회사채·CP(기업어음) 발행으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많이 조달한 대기업그룹도 상시적인 기업구조조정 수단인 주채무계열에 선정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주채무계열 선정방식을 금융회사 대출·보증 등 '총신용공여액'에서 시장성 차입을 포함한 '총차입금'으로 10년 만에 변경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채무계열이 지금보다 2~3곳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주채무계열 선정기준을 현행 '금융회사 총신용공여액'에서 '총차입금'으로 바꾼다고 4일 밝혔다. 주채무계열은 빌린 돈이 많아 주채권은행 관리를 받아야 하는 기업집단을 말한다. 주채무계열 중 재무구조가 나쁜 곳은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어야 한다.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현행 주채무계열 선정기준은 '전년말 금융회사 신용공여액이 전전년말 금융회사 전체 신용공여액의 0.075% 이상’인 경우다. 이 기준으로 올해는 금융권 신용공여액 1조5745억원을 초과하는 삼성·CJ·한화 등 30개 기업집단이 선정됐다.
내년부터는 회사채·CP 등 시장성 차입금도 고려 대상이 된다. 금융회사 신용공여액과 시장성 차입금을 합산한 '총차입금'이 명목 GDP(국내총생산)의 0.1%이면서 은행권 신용공여가 전체 은행 기업신용공여의 0.075% 이상이면 주채무계열이 된다.
예컨대 A계열그룹의 2019년 말 △금융권 총신용공여액 1조1000억원 △ 은행권 신용공여액 1조원 △시장성 차입액 1조2000억원 △총차입금 2조3000억원이라고 하자.
현행 방식에 따르면 A그룹의 총신용공여액이 1조6900억원(금융권 신용공여 합계의 0.075%)을 넘지 않기 때문에 주채무계열에서 빠지지만 내년부터는 총차입기준 1조7827억원(명목 GDP의 0.1%)과 은행권 신용공여액 9423억원(은행권 기업신용공여 합계의 0.075%)을 넘기 때문에 채권은행의 관리대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10년여 만에 주채무계열 제도를 '대수술' 한 이유는 기업의 자금조달 방식이 다변화했기 때문이다. 실제 주채무계열에 선정된 대기업그룹이 금융회사에서 조달한 자금 대비 회사채·CP 비중은 2010년 40.7%에서 2018년 말 68.2%로 늘어났다.
돈을 빌리는 기업 입장에선 시장성 차입이나 은행 대출이나 큰 차이가 없는데도 구조조정 방식이 금융회사 차입에만 맞춰져 있어 한계점이 많다는 지적이 많았다. 멀게는 CP로 자금을 조달한 동양그룹이나 가깝게는 1조원 대 ABS(자산유동화증권)를 발행한 금호아시아나항공이 단적인 예다.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은 시장성 차입을 급격히 늘린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에 애를 먹기도 했다.
내년에 변경 된 제도로 주채무계열을 선정하면 대상 대기업 그룹이 올해 보다 약 2~3개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시장성 차입이 많은 기업 위주로 주채무계열 '손바뀜'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또 채권은행과 주채무계열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을 때 '부채비율 감축 계획'뿐 아니라 '사업계획, 경영전략'도 반영해 약정이행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다. 채권은행이 부채비율 감축만 강조하면 '돈줄'이 막힌 기업이 핵심자산까지 내다 팔아 장기 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현대상선은 구조조정 자구안에 따라 선박, 컨테이너, 항만 등 핵심자산을 내다 팔아 결과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또 기업의 해외진출이 확대된 점을 감안해 해외계열사를 포함한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재무구조를 평가하기로 했다. 주채무계열 전체 계열사 중 해외 계열사 비중은 2008년 말 59.0%에서 올해 4월말 기준 73.9%로 늘었다.
금융당국은 올 하반기 새 제도의 영향분석을 거쳐 은행업감독규정 등을 개정해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한편 올해 주채무계열은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1조5745억원 이상인 30개 대기업 그룹이 해당된다. 기준액은 지난해 1조5166억원 보다 579억원(3.8%) 늘었지만 대상기업은 1곳 줄었다.
구체적으로 한국타이어, 장금상선, 한진중공업 등 3개 계열이 빠지고 동원, 현대상선 등 2개 계열이 편입됐다. 한진중공업 계열의 경우 채권단 출자전환에 따른 계열분리로 신용공여액이 줄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주채권은행은 주채무계열로 선정된 30개 계열에 대한 재무구조평가를 상반기 중 실시하고, 재무구조평가 결과 선제적 재무구조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계열은 약정을 체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