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한용구 전 신한은행장은 취임 간담회에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인터넷뱅킹 자동이체 수수료 면제를 약속했다. 2023년 새해가 되자 한 전 행장은 약속을 즉시 이행했다. 한 전 행장은 "은행이 이익을 낸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이체 수수료 면제를 가장 빠른 시기에 시행하겠다"며 "모든 은행이 동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이 잇따라 이체 수수료 면제에 동참했다. 한 전 행장은 건강상 이유로 한달만에 리딩뱅크 수장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사회환원 방식은 영원히 남게 됐다.
금융소외계층을 지원하는데 앞장선 한 전 행장의 일화는 또 있다. 영업그룹장(부행장) 시절인 지난해다. 신한·국민·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들은 우체국과 제휴를 맺었다. 고객들은 별도 수수료 없이 전국 2500여개 우체국에서 금융업무를 볼 수 있게 됐다. 당초 논의과정에서 은행들은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시행하다가 지역을 넓히기로 했다. 하지만 한 전 행장이 모든 지역에서 바로 시행하자고 주장했다. 은행들은 우체국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부담이 생겼지만 영업점이 없는 곳에서도 최소한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은행이 뭇매를 맞고 있다. '이자장사'로 쉽게(감정노동이어서 쉽다고 못한다) 많은(국내 은행의 수익성은 전세계 하위권이다) 돈을 벌고 있는데 고액 연봉과 성과급(고객돈에 욕심내지 말라고 적절한 월급을 주고 있다), 희망퇴직금(젊은 세대를 채용하기 위해서다), 주주배당(배당성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미친다) 등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그러면서 은행이 '공공재'이니 사회적 역할을 다하라고 한다.
은행들은 공감한다.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돈을 벌고 있고 규제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는 것도 사실이어서다. 이에 은행권은 3년간 7800억원을 투입해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취약계층 등에 풀겠다며 화답했다. 또 올해 37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 공공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떠난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년후 금송아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손에 물 한 모금을 달라는 니즈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권에선 "이제 당국만 바라보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과거엔 인사, 신사업 등을 진행할 때 금융당국 눈치를 살폈는데 이제 사회환원 방식마저도 당국 입맛을 맞춰야 한다는 푸념이다.
1980년대만 해도 은행장을 선임하기 위해선 정부 허락이 있어야 했다. 신한은행 창업주 이희건 회고록은 김세창 초대 신한은행장 선임 과정을 다루면서 "당시엔 주요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적었다. 은행장 선임 등 인사뿐만 아니라 금리를 정부가 정해준 시절도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은 점차 줄었지만 그림자 규제와 구두규제 등으로 은행들은 무엇 하나 스스로 하지 못했다. 사전 규제를 줄이고 사후 규제를 강화하고,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결국 은행은 자의타의로 자유를 내놓게 된다.
자유를 잃은 은행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시키는' 일만 했다. 정부가 바뀌면 '시키는' 일도 바뀌었고 과거 정부 입맛에 맞게 내놓은 서비스와 상품들은 사라졌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내놓았던 뉴딜펀드와 청년희망적금 등은 각각 이름이 바뀌고 지원예산이 주는 방식으로 사장되고 있다.
금융회사가 자유를 잃고 당국 '눈치'만 보면 그것이 '관치'다. '관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당연히 '관치' 산물도 영속적이지 않다. 은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영속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면 눈치 주지 말아야 한다. 영속적인 산물은 자유 시장에서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외친 이유다. 은행도 '자유'를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