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유통판 '복면가왕'이 보고싶다

송정훈 기자
2015.05.04 08:45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저런 가수들을 볼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일요일에 ‘복면가왕’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내와 나눈 대화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거나 보고 싶었던, 숨은 실력파 가수들이 가면을 쓰고 오직 노래만으로 경합을 벌이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롯이 노래에만 귀를 기울이며 “저 가수는 누굴까”라며 모처럼 우리 부부도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판매처가 마땅치 않아, 어찌 팔아야할지.” 최근 만난 신생 생활용품 제조업체 A사 대표의 말이다. A사는 창업한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신생 업체지만, 애견용품 등 세계 최초의 신제품들을 개발해 시장에선 제법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하지만 무명의 신생업체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홈쇼핑 등 주요 판로의 문턱을 높기만 하다. A사 대표는 “매출은 아직 미미한 반면 연구개발과 인력 충원 등으로 비용은 늘어나고 있어 유통사에 대규모 수수료를 낼 여력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들은 왜 이처럼 만성적인 판로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무엇보다 중소기업에 대한 독과점 유통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이 주범으로 꼽힌다. 주요 대형 유통사들은 모두 수익성에만 급급해 중소기업 제품 판매엔 미온적일뿐 아니라 중소기업 제품에는 높은 수수료를 부과한다. 이렇다보니 중소기업이 유통시장에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가 지난해 유통시장을 분석한 결과 상위 3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백화점은 2001년 61%수준에서 2012년 89%, 같은 기간 대형마트는 52%에서 88%까지 늘었다. 홈쇼핑은 2005년부터 70%를 넘어선 뒤 2012년 74%를 기록했다. 사실상 각 유통분야별로 소위 ‘빅3 업체’들이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판매하는 제품 중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 보다는 대기업이나 명품 비중이 절대적이다. 홈쇼핑 역시 판매실적이 좋은 프라임 시간대엔 대기업 제품을 집중 편성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유통사들이 부과하는 중소기업 판매수수료는 업체별로 근소한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보다 훨씬 높은 평균 30% 안팎에 달한다. 1만원 짜리 제품을 팔면 3000원 정도를 유통사들이 수수료로 가져가는 셈이다. 또한 유통사들이 입점조건으로 판매장려금이나 광고, 판촉비 등을 요구해 부당이익을 챙기는 '갑질'도 사라지질 않고 있다.

정부가 일부 시장의 우려에도 오는 7월 공영 TV홈쇼핑을 출범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중소기업의 판로난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통업체들이 ‘복면가왕’처럼 제품 품질만 우수하다면 중소기업에도 파격적인 입점기회를 비롯해 다양한 혜택을 주는 노력을 기울이면 어떨지. 숨은 실력자들의 등장은 유통업체에도 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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