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 업계 '순진함'이 낳은 결과는?

신아름 기자
2016.08.01 06:26

[기자수첩]

"가격 대립이 한창일 때 정부가 나서 중재를 해줬죠. 그래서 가격을 올릴 수 있었던 건데 이제 와서 담합이라니요? 억울합니다."

국내 한 골판지 업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최근 골판지 업계에 부과된 담합 과징금은 당시 업계 상황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 집행한 행정편의주의 단면이라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원지에서부터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전 지종에 걸쳐 국내 골판지 업체 40여곳에 총 10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각 업체의 영업담당자 등이 수시로 만나면서 가격 인상률과 시기 등을 조율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해보인다.

골판지 주요 원자재인 폐지 가격은 지난 2007년 톤당 8만원에서 14만원으로 75% 폭등했다. 중국이 국제적으로 폐지를 '싹쓸이'하면서 폐지 수급에 이상이 생긴 탓이다. 폐지를 사서 원지를 만들고, 원지를 사서 상자를 만드는 국내 골판지 업체들의 수익성은 줄줄이 악화됐다. 골판지 상자의 주요 수요처인 제과업체, 대형 택배사 등이 원가 인상분을 납품가에 반영해주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가격을 둘러싼 골판지 업계와 택배 업계간 대립이 지속되면서 양측 모두 타격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이유로 소관 부서인 지식경제부 등이 중재에 나섰고 결국 상생협약 등을 통해 문제는 일단락됐다.

이랬던 것이 이제와 담합이라니 골판지 업체들 입장에선 억울할 일이다. 명분을 갖고 가격을 인상했지만 돌아온 건 불공정거래 집단이라는 낙인과 과징금이라는 사실에 허탈할 뿐이다. 골판지 업계에선 당시 정부의 말을 철썩같이 믿은 순진함이 죄라는 한탄이 나온다.

물론 증거를 토대로 규정과 절차에 따라 내린 과징금 처분이니 절차상 오류는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기계적인 규정 대입과 판결에 앞서 보다 꼼꼼히 전후사정을 살피고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을 다했다면, 이원화된 부처 간 업무 속에서도 좀 더 적극적인 공조 의지를 보였다면 골판지 업계의 배신감은 상당폭 누그러지지 않았을까.

골판지 업계가 공정위 과징금 처분에 맞서 신청한 이의제기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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