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엔젤 투자, 진정한 '천사' 되려면?

강경래 기자
2016.10.19 05: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당시 '엔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기능성화장품업체 파이온텍 김태곤 대표는 창업 초기를 돌아보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공학도인 그는 다국적 회사에서 소위 잘 나가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지만 우연찮은 계기로 2001년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창업에 도전, 이듬해 첫 제품인 공기청정기를 출시할 수 있었다. 해당 분야에 선도적으로 진입한 결과 회사는 급성장을 이어갔다.

승승장구하던 김 대표는 기업공개(IPO)까지 추진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진 한 파트너를 만났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었다. 파트너가 회사 자금을 모두 빼돌려 달아난 것. 김 대표는 이후 금융권과 함께 외주생산업체, 부품협력업체 등 사방에서 자금 압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빚더미에 앉은 김 대표는 이후 채권자들을 피해 찜질방을 전전해야 했다. 심지어 한강에서 자살까지 시도했다. 이런 김 대표에게 손을 내민 이는 한국 벤처 1세대 기업가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황 회장은 2006년 파이온텍 주식 일부를 총 25억원에 사들였다. 빈털털이였던 김 대표의 '열정'만을 보고 결정한 엔젤투자였다.

김 대표는 이 자금으로 빚을 청산하고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황 회장은 이후 틈날 때마다 김 대표에게 경영 노하우도 전수했다. 엔젤투자로 재기에 나선 김 대표는 이후 공기청정기기술을 응용한 피부침투기술을 확보, 현재 기능성화장품 분야에서 주목 받은 기업인이 됐다. 파이온텍은 올해 300억원 이상 매출액을 예상한다.

이는 벤처업계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선배 기업인이 엔젤투자를 통해 후배 기업인의 재기와 성공 창업을 도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듯 선배 기업인이 자금과 함께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후배 기업인의 재기와 성공을 지원한 사례는 벤처업계에서 간간히 들린다.

정부 역시 벤처업계 선·후배 간 매칭을 통해 성공 창업을 이끌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중기청이 운영하는 '선도벤처업계 기술창업지원사업'이 대표적. 이는 정부에서 창업 3년 미만 업체들 가운데 우수기업을 선정, 9000만원까지 자금을 지원하고 선도벤처기업은 창업을 위한 공간과 기술·경영·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형태다.

하지만 실적이 미미한 벤처기업들에 있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일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김 대표는 "엔젤투자 이후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벤처캐피탈과 엔젤투자자 등 20여 곳을 찾아가 설득해봤지만 허사였다.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실적이 부족하다는 게 공통된 이유였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말 벤처펀드 신규투자 중 창업한지 3년 이내 창업초기기업 비중은 31%에 불과했다. 반면 7년 이상 된 창업후기기업 비중은 상대적으로 많은 41%였다. 벤처투자가 어느 정도 실적이 있고 해당 분야에서 검증된 기업들 위주로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벤처'투자는 말 그대로 '모험'이어야 한다. '엔젤'투자 역시 황 회장처럼 투자 수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천사'일 때 더욱 빛날 수 있다. 엔젤투자로 기사회생한 김 대표는 말했다. "회사가 자금 여력이 생기면 가장 먼저 후배 기업인을 위한 펀드를 조성할 것이다. 이는 투자 유치에 실패한 기업인들만을 대상으로 투자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운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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