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사업은 대북제재와 관계없이 남북의 신뢰관계 회복을 위해 반드시 재개돼야 한다."
잊혀져 가던 개성공단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 시에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기업 피해대책위원회는 최순실 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피해보상특별법 제정과 개성공단 재개까지 동시에 촉구하고 나섰다.
나아가 정세균 국회의장은 21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성공단 우리기업 상품 전시회' 자리에 참석해 개성공단은 남북 상생의 가장 실효성 있는 사업으로서 반드시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선실세 개입 의혹이 커지자 최근 통일부는 "북한을 압박, 비핵화를 유도하자는 고육지책에서 나온 정치적 결단"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핵실험을 비롯한 숱한 위기에도 개성공단만큼은 유지됐다는 점에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더구나 정부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폐쇄했다고 하지만, 정작 피해는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애꿎은 우리 기업들만 보게 됐고 정부 측이 인정한 피해액수만 7779억원에 달한다.
만약 개성공단에 대한 비선실세 개입 의혹이 사실이라면 개성공단 중단은 잘못 결정된 정책임이 분명하고, 즉각적인 피해보상은 물론 하루속히 개성공단이 재개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당위적인 논리와 주장만으로 개성공단을 재개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볼 때 이미 폐쇄한 개성공단을 재개한다는 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첫째, 정부가 개성공단 이슈를 북한 핵 문제와 연동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의 이유로 북한 근로자 임금의 70%가량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러한 입장을 현재까지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개성공단 사업 자체가 북한의 무기 개발 자금 유입을 엄격히 금지하는 UN 대북제재 결의안에 위배됨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 지난 2월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개성공단 중단 결정이 국제사회의 입장과 일치한다며 지지한 바있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 핵무기 개발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정부가 국내외에 명백히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흘러들어 간 근로자 임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밝혀야 하는데, 과연 북한에서 그러한 내부자료를 우리 정부에게 선뜻 건네줄 수 있을까?
둘째, 개성공단 재개에는 북한 정권의 허락이 필요하며 받아들이기 힘든 정치적·경제적 조건들이 추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개성공단 중단 시 우리 정부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이를 일방적으로 북한에 통보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결정에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즉각 근로자 퇴거 및 자산 동결 조처를 내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비선실세의 개입때문이라며 개성공단을 재개한다고 하면 과연 북한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즉각 개성공단 재개를 받아들일까? 즉, 이제 개성공단을 재개하려면 북한 정권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북한이 개성공단 재개를 수용한다 해도 거기엔 조건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으로는 통일부나 대통령의 사과 표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정부의 정책 결정상의 오류를 자인하는 것이며, 외교상으로 볼 때 거의 수모에 가깝다.
경제적으로 북한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근로자 임금 인상 등 경제적 보상이나 경제적 지원 자금까지도 요구할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북한이 요구하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조건을 들어준다고 할 때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심각한 국론 분열을 낳게 될 수 있다. 과연 우리 정부가 예상되는 모든 부담과 정치적 책임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이유는 정부 스스로가 개성공단 사업의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개성공단은 지난 12년 동안 북핵실험, 미사일 발사, 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남한 근로자 억류 등 다양한 한반도 위기상황 속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왔다.
단적인 예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경협을 전면 중단하는 '5.24조치'가 시행됐을 때조차 개성공단만큼은 유지했다. 그런데 이러한 개성공단을 박근혜 정부는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압박한다며 갑자기 폐쇄해버렸다.
이로 인해 123개에 달하는 입주기업들과 협력업체들은 졸지에 갈 바를 잃고 뿔뿔이 살 길을 찾아 흩어지게 됐고,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영세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렇게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킴으로써 기업들은 북한 정부뿐 아니라 우리 정부에 의해서도 개성공단이 얼마든지 중단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향후 어렵사리 개성공단이 재개된다고 해도 우리 정부에 의한 공단폐쇄를 경험한 기업들이 과연 리스크를 안고 개성에 다시 진출하고 투자할 수 있을까?
게다가 기존 입주기업은 이미 장기간 공단 폐쇄로 인해 못쓰게 된 기자재와 설비를 다시 마련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재조달해야 한다. 또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이미 신뢰를 상실해 사업을 재개해도 거래처나 협력업체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재개시 기업 편에서는 개성공단을 중단시키기 않겠다는 정부의 보증이 필요한데, 이는 불확실한 남북 관계를 고려할 때 정부가 보증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점을 안고 있다.
과거 개성공단을 폐쇄할 때는 우리 정부가 손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개성공단 재개 문제는 우리 정부의 결정만으로는 풀기 힘든 고차방정식으로 변해버렸다.